제 삶을 구성하는, 바꿀 수 없는 몇 개의 텍스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딸아이의 아빠, 기독교, 목사 등.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텍스트를 받아들여 해석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가진 걸 해석하고 살면 외로워집니다. 그가 부러워서 내가 몰래 가져온 것이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건 친구가 되지 않고 남남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어야 산 넘고 물 건너 별의별 곳을 다 다니더라도, 끝까지 동행하는 친구로 남습니다.

삶은 하나의 표본이 아니라 끝까지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 비슷한 사례를 다른 사람이 지닌 삶의 자리에서 찾아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텍스트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돋보기가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로운 해석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복을 얻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기독교 신앙에도 해석이 필요합니다. 해석 없는 신앙은 맹종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해석할 필요가 없는 텍스트를 굳이 해석해야 한다고 억지로 구겨 넣어,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 게으른 사람은 마음에 있는 해석의 돋보기가 뿌옇게 돼도 잘 닦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숨겨 놓으셨기에, 인간의 이해력으로 해석하기 힘든 텍스트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텍스트를 만나면 생기론의 관점으로 이해하라고 합니다. 인간이 겪는 생명 현상에는 특별한 게 있고,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영향을 끼치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생기론은 삶을 특별한 원리나 본질을 첨부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생기론은 생명이 아름다운 건 생명체 내부에 그 속성이 있는 것도 있지만, 그것과 다른 바깥에 있는 무엇과의 결합으로 주도되는 게 더 많다고 합니다. 생명체 내부의 시각으로만 보면 화학 및 생물학적 반응의 결합체가 생명입니다. 밖에서 생명체를 이끌어 가며 더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과 종교가 생명체 내부에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동양학에서 말한 복이 거의 없는 분이지만, 성령님을 통해 부활이라는 복이 그분에게 나타났습니다. 이건 동양학이 제시한 인간 이해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삶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도입해야 합니다. 이 틀로 보면 인간이 정의를 위해 받는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24).

지상에서 누리는 삶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세계의 궁극적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지닌 한계를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남겨질 가치를 토대로 이 땅에서의 삶을 가꿔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 숨겨져 있는 매듭이 풀립니다. 우리가 이 매듭을 풀어야 예전부터 내 옆에 계셨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줬던 은혜의 손이 보입니다.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제는 구약성경에도 나옵니다. 히브리어에서 복을 뜻하는 '바라크'는 사람이 하나님께 엎드려 순종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만약 거꾸로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찬양하거나 인간에게 무릎을 꿇으면 강복(降福)의 주체가 바뀐 것이기에 저주가 됩니다(욥기 1:5). 히브리인은 같은 단어를 행동의 주체에 따라 복과 저주라고 다르게 읽었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저도 요즘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사람을 다르게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해가 여자였는데, 요즘 저는 그녀를 친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편이 돼주는 오랜 친구가 안해입니다. 예전에는 안해라는 여자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고, 지금은 내 편이 돼주는 친구를 만나게 해 주신 그분이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주어진 텍스트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롭게 해석하고, 담아야 할 간절한 소망을 거기에 담아 보십시오. 그래야 삶에 생기가 돋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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