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주어졌었기에,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누렸던 자유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거창하게 치아라고 말하기는 뭐하고, 이를 뽑았습니다. 이빨을 뽑은 게 아닙니다. 이빨은 동물에게 쓰는 명칭입니다. 보철해서 한 30년 썼던 어금니를 뽑았는데, 임플란트로 시술을 마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치과에서 어금니를 뽑고 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음식은 한쪽으로만 씹어야 하고, 이를 뽑을 때 의료용 망치까지 동원해서 뺀 덕에, 이를 뺀 지 1주일 지나도록 잇몸이 부은 채 욱신욱신 쑤셔댑니다. 이제는 노화돼 가는 몸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보철도 아니고 아예 이를 뽑아 새롭게 설치해야 다시 쓸 수 있는 치아가 현재 제 몸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어릴 적에 마음껏 사탕을 먹어대며, 잇몸이 부어 고름이 생겨도 이를 잘 닦지 않고 저녁에 잠을 자는 철부지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 결과 10대 후반에 충치가 생겨 어금니의 신경치료를 했고, 이어 보철로 치아보강을 했습니다. 이제 보철도 수명을 다했고, 설탕의 달콤함을 만끽했던 자유는 오른쪽 어금니를 뽑는 올무가 돼 나타났습니다.

▲ 사진설명 ⓒ 세이프타임즈
▲ 정이신 논설위원

자유가 좋은 것이고, 이게 없으면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 놓고 찬양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유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그게 독이 돼 나를 갉아 먹는다고 합니다. 제 경우도 20대에 자유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50대 후반이 되니 저를 얽어매는 올무가 된 게 있습니다.

이건 자유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해 제가 그걸 쓰는 방향을 잘못 정해 놓고, 그쪽으로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한 결과입니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죄용서의 자유를 올바른 방향으로 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쓰면 저처럼 부도가 납니다.

제가 지닌 부끄러움을 한탄하다가 주변을 보니, 몸이 고장 났다고 한숨짓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많이 들립니다. 저와 비슷한 이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들의 전화가 자주 걸려옵니다. 그래서 '치과 치료는 받았지만 특별한 외과수술 없이, 나름대로 병원 신세를 적게 지고 살아온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아주 병약했습니다. 조금만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따뜻한 밥이나 국을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어린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또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관절염을 앓았기에, 학교에서 운동만 조금 하고 나면 새벽녘에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날이면 무릎을 부둥켜안고 울며 새벽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게다가 병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도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진단서를 발급해 주지 않았고, 이런 무릎을 안고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입대할 때도 어머니는 울음으로 저를 보냈고, 제 무릎의 건강을 아주 많이 걱정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유격훈련과 같은 거센 훈련을 받아도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동안은 무릎이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역 후에는 군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무릎 주변의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요법 등을 통해 건강을 관리했고, 지금까지 잘 지냅니다.

그것의 가치를 알고, 준비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는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가르쳤던 북향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원석 같은 이들을 보석으로 키워내는 자유가 북한에는 없습니다. 자유는 우리에게 소중한 아이들을 21세기에 맞는 인재로 키워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어금니가 홀라당 빠진 입안을 거울에 비춰 보면서, 앞으로 제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방향을 어디로 설정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가 가진 자유로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더 해야 합니다. 자유에는 공짜가 없기에 주어진 걸 제대로 써야 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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