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쇠망치와 돌도끼
[정이신 칼럼] 쇠망치와 돌도끼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1.07.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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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손의 농부가 지고 가는 빈 지게를 뒤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사진 밑에는 '빈 지게가 더 무겁다'라는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사진 내용을 작가가 한 마디로 축약한 문장을 읽는 데 짜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비어 있는 게 더 가벼운 것'이란 생각으로만 살았던 제게 사진 밑에 있는 조그마한 문장이 만들어 준 쇠망치는 파괴력이 컸습니다.

저는 꼰대 소릴 듣는 견강(堅强)한 노추·노해가 아니라 유약(柔弱)한 노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진에 곁들어진 문장에 담긴 통찰을 다시 읽었습니다. 제가 자리 잡아야 할 사회의 한 귀퉁이와 가다듬어야 할 행동지침을 사진에 곁들인 글을 통해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저를 위해 패러디했습니다.

"나눌수록 더 커진다. 여유 시간이 많은 사람이 분초를 다투는 일로 급하게 사는 사람보다 더 무료하고, 그래서 별 의미 없고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보낼 수도 있다."

"노추·노해의 처지로 전락한 지게는 물건을 옮기는 수단이 아니라, 집안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짐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런 지게는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노인의 오래된 지게보다 더 쓸모가 없다."

▲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사피엔스'에 나온 로마인이 벌인 전투와 전쟁에 관한 고찰을 읽으면서는 한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를 푸는 열쇠를 얻었습니다. 그날이 마침 특수하고 괴이한 자가당착의 신념에 빠져, 부모는 물론이고 사회와 대화를 거부하는 젊은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온 날이었습니다.

자식을 제게 데려온 부모의 답답함을 알지만, 확증편향에 갇힌 젊은이와의 상담은 꽉 막힌 2차선 도로였습니다. 집에 와 마음도 풀 겸 책꽂이에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쳤는데, 유발 하라리가 쓴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읽으면서 그은 밑줄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전투에서는 지고 또 지면서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타격을 입더라도 버티고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제국이 될 수 없다.'

이번에는 이걸 패러디했습니다.

"때로 각개전투에서는 밀릴 수 있지만, 전선을 통괄하는 전쟁에서는 지면 안 된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치르는 신앙적인 개별 전투는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렇기에 모든 전투에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를 떠나라고 유혹하는 어둠과의 전쟁에서는 이겨야 한다."

"목사로 사역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타격을 오늘 입었더라도, 신앙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스스 털고 일어나 내일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 신앙인으로 치러야 하는 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이러저러한 어려움으로 헤매고 있을 때, 흔들리지 않게 저를 붙잡아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닌 조그마한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그분들이 겉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늘 일정한 거리에서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터널에서 꽤 오랜 기간 헤맸을 것입니다. 그분들 덕에 광풍처럼 닥친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자, 이번 칼럼에 담긴 수수께끼 고개를 넘어오면서 눈치채셨습니까. 좋은 글과 사람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고, 거친 파도를 넘을 수 있도록 내게 도움을 줍니다. 여기에 자신의 성찰을 담은 글쓰기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니 스쳐 지나가듯 봤던 글에 다시 눈을 돌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굳은 생각을 깨뜨리는 쇠망치가 거기에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해 아래에서 산 날이 많아질수록 굳어지는 내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 이건 꼭 장만해야 합니다. 이걸 곁에 두면 세상의 편견이 나를 멀리 떠납니다. 그런데 쇠망치와 달리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든 돌도끼는 잘 깨집니다. 또 날을 날카롭게 세우다가 떨어진 돌조각으로 인해 내 손이 엉망으로 망가집니다. 그러니 쇠망치만 장만해 두십시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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