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야 하는 생명의 길을 예수님은 좁은 길이라고 하셨는데(마태복음 7:13∼14), <잠언>은 큰길이라고 합니다(잠언 16:17).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서 말한 길이 모두 하나님이 기쁘게 생각하시는 길인데도 표현은 서로 다릅니다. 이는 솔로몬과 예수님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이 길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대로(大路)'를 히브리어로 보면 '높인 길, 공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공도(公道)는 법률로 정하는 것이기에 이 길은 위에서 본 것입니다.

솔로몬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말씀한 '좁은'은 헬라어로 '얇다, 가난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시각으로 본 것입니다. 같은 길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큰길이고, 인간의 눈에는 좁은 길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납니다.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과 다른 사람이 말한 게 다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온갖 방법을 써서 끝내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사례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역경을 이겨낸 대단한 존재라는 징표로 내놓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사례를 부러워할 뿐 그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감내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칭찬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그러나 이때 칭찬을 받은 당사자는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사람이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습니다.

자신이 보기에만 큰길을 간 사람은 끝이 안 좋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온 이야기 중에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 때 남북으로 분열된 후, 북왕국이 먼저 이런 길로 갔습니다.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는 여느 이스라엘 왕보다도 오래 통치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각각 40년을 통치했지만, 그는 41년을 통치했습니다.

또 북왕국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누렸기에, 이 시기를 북이스라엘의 황금시대 또는 은빛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우상숭배의 죄를 벗어나지 못한, 모범적인 왕이 아니었다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평가합니다.

여로보암 2세처럼 자신이 성취한 업적에 취해 복합적인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이때 사기꾼이면서 목사, 성폭행범이면서 메시아, 아우슈비츠에 근무했던 게슈타포면서 집안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인 기괴한 인물이 만들어집니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독재를 하면 대체 국체(國體)가 뭔지 헷갈립니다. 헌법에만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명기해 놓고, 특정 가문이 독재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시민도 눈치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이비·이단에 속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혼란도 이와 비슷합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교주가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라는 걸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판단력이 흐려져 온전한 자아정체성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복합골절로 뼈가 두세 개 어긋났다고 해도, 먼저 기초가 되는 뼈마디부터 맞춰야 다른 뼈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병으로 눈이 어두워져 큰길과 좁은 길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 고치기 위해서도, 이런 방법을 써서 병을 하나씩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작고 좁은 길로 먼저 가야, 나중에 크고 넓은 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갓길 없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엄청난 정체를 겪지만, 갓길이 있으면 사고가 나더라도 도로의 정체가 빨리 풀립니다. 이처럼 큰길이 막혔을 때 그걸 고칠 수 있는 게 좁은 길입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은 큰길에 비해 작은 게 아니라, 넓은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삶의 질을 바꾸게 하는 좁은 길이 오늘도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과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은 남이 대신 가주지 않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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