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신고했지만 '경보기 오작동' 수수방관 무시
일용직 노동자 청와대에 '긴박했던 순간' 국민청원

▲ 21일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에서 고인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1일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에서 고인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17일 이천 덕평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일 화재 당시 근무 중이었습니다. 언론에 나온 '최초 신고자보다도 10분 더 빨리 화재 발견한 노동자'입니다.

기적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던 소방대장님의 소식을 듣고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무엇이든 해보려 청원 올립니다.

당일 저는 1층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17일 오전 5시10~15분 화재경보가 울렸지만, 당연하듯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잦은 화재 경보 오작동 때문인데요.

쿠팡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화재 경보를 들었던 날. 너무 놀라 쿠팡 관계자에게 "불이 난 거냐"고 물어봤지만 "오작동이니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 하라"는 답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을 했었답니다.

그 후로도 여러날 잦은 화재 경보 오작동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날도 화재 경보가 오작동이라 인식,  오전 5시 26분경 1층 심야조 노동 진군들 모두 퇴근 체크를 하고 1층 입구로 향하는데 C구역에서 D구역으로 연결된 1.5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밑쪽.

이미 가득 찬 연기와 어디선가 계속 쏟아 오르는 연기를 목격했습니다. 계속되는 화재경보에 센터 셔터문이 차단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퇴근하던 심야조 동료분들은 "진짜 불이다. 불난 것 같다"며 입구까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입구쪽으로 가는 길. 허브쪽을 보니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인식을 하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보고도 그냥 갈 수가 없어 "저기 안에 사람들은 어쩝니까. 다 알게 해줘야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들은 뛰어 나가기 바빴다.

저와 함께 나오던 친한 심야조 동료들에게 "먼저 가고 계시라"고 말한 뒤, 저는 허브쪽 동료들을 향해 미친 듯이 뛰고 손을 흔들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쳤습니다.

▲20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이야, 불났어요. 진짜 불났습니다. 여기 연기 좀 보세요. 불났어요. 불 오작동 아닙니다. 진짜 불났어요."


그렇게 허브 쪽 노동자들이 저를 보고 화재 인식을 하실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을 외쳤다. 다행히도 몇몇 분들이 인식하신 걸 보고 난 후에야 저 또한 입구로 향했습니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빠른 신고부터 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핸드폰이 없어 화재를 보고도 신고를 못하는 상황이라지만,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먼저 나간 동료들이 있었기에 신고나 제보를 해줄거라 생각했습니다. 허브쪽에 노동자분들 화재를 알려주고 입구 검색대 보안요원에 갔습니다. 무전기도 있고 핸드폰도 소지하실 수 있는 보안팀입니다. 제가 핸드폰을 가지러 가는 것보다 더 빠른 조치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화재 경보 오작동 아닙니다. 안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층에 연기가 이미 한 가득이었고, 화재 맞는 것 같아요. 무전을 하든지 어떻게 빠른 조치 좀 해주세요. 심각합니다. 장난 아니에요. 불났어요."

"불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까. 퇴근이나 하세요. 어차피 화재가 맞아도 나가는 길 여기 하나니까. 불났으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

"연기가 심하다고요. 뭐 장난치겠어요. 연기가 심하다는데 확인도 한번 안 해보고 왜 자꾸 오작동이라 하시는 거예요. 무전기 있으니 말이라도 해주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안에 일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확인해 주세요."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슨 사람을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다시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듣는 척도 안했다. 그런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 화가 나 1분1초가 다급해 다른 관계자를 찼다가 지하 2층 와처분께 또다시 화재 상황을 알렸고 조치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청 크게 계속 웃었다.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되요."

"왜 웃으세요. 확인 조치는 단 한 명도 하실 생각도 없으신가 보네. 무슨 오작동이냐. 1층에 연기가 30분 전부터 이미 그 정도로 가득했다면 화재가 확실하다. 한번 확인해 주는 게 어렵냐. 안에 허브 분들은 아직 근무시간이다. 이러다 화재가 맞고 사람 다치면 책임질 거냐."


퇴근하시는 다른 노동자 한 분이 오셔서 "연기는 허브 쪽 컨베이어 과부하로 벨트에서 난 겁니다"라고 말했다.

"과부하로 벨트에서 나는 연기 수준이 아니다. 진짜 화재면 어쩌려하냐. 확인하고 얘기해라. 1층 D라인 E라인 연기가 가득했기에 1.5층 화재난 거 아니냐. 심각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마치 저를 '정신 이상자인' 것처럼 대하며 끝까지 웃기만 하면서 제보를 묵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퇴근하세요."

▲ 21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진행된 경기 광주소방서 구조대장 고 김동식 소방령 영결식에서 고인의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21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진행된 경기 광주소방서 구조대장 고 김동식 소방령 영결식에서 고인의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대응에 수치스러움까지 느꼈습니다. 왜 굳이 그분들은 제가 수치스러움까지 느끼게 했어야 했던 것인가. 아직도 눈 감을 때마다 미친듯이 웃던 그 얼굴이 계속 떠올라 너무 힘드네요.

어떻게 일용직 노동자인 저보다도 못한 그런 사람들이, 그런 직책을 맡고 있는 건지. 화재 당일부터 소방대장님의 참사 소식 듣기 전까지 저 스스로 제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물류센터 관리자를 믿고 제보와 조치 요청을 하려던 그 시간에 차라리 핸드폰을 찾으러 가서 전원키고 신고를 했더라면 이렇게 참사까지 불러온 대형화재로 번지기 전 초기 진압돼 부상자 없이 무사히 끝났으려나.

진짜 한심하다. 왜 난 그러고 있었던 것인가. 화재 발견 직후의 내가 한 행동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나. 별별 생각이 든다. 이런 심정으로도 청원부터 드리려 하는 것은 쿠팡 물류센터는 3년전 담뱃불로 인한 화재사고가 있었습니다.

한번 겪었음에도 불과하고 개선된 것이 전혀 없다. 참사까지 불러온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을 알리고 평소에도 정전 등 크고 잦은 화재경보 오작동 외에 작은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쿠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오작동이 많다'며 꺼둔 스프링클러는 화재 당일에도 대피방송이 아닌 노동자들 스스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도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3년 사이 두번째 겪는 화재였음에도 얼마나 허술한 책임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었는지, 그 후 관리도 얼마나 허술했는지 변화없는 심각한 안전불감증까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고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사고로 사고의 정확한 책임 규명에 사건관련 처벌 대상자들은 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내려 주시고,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으로 인해 막을 수 있던 참사까지 겪는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만큼은 올바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대책만 세울 것이 아니라, 이를 꼭 시행시켜 개선될 수 있도록 끝까지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소방대장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심각한 안전불감증이 불러낸 참사까지 이어진 사건 사고들은 정말 더이상은 반복되지 않도록 바라며 청원 올립니다.

[편집자주]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덕평쿠팡물류센터 화재는 처음이 아니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23일 8885명이 참여했다.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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