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위탁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사유"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유족들이 쿠팡CLS 대표 고발장을 서울노동청에 제출하고 있다. ⓒ 대책위원회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유족들이 쿠팡CLS 대표 고발장을 서울노동청에 제출하고 있다. ⓒ 대책위원회

가구와 가전제품을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이튿날 배송해 설치까지 해주는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대표가 목숨을 끊었다.

6일 경찰과 MBC 단독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충북 청주의 쿠팡 가전·가구 배송 대리점 대표 정모씨가 건물 뒤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 대표가 창고 계단 난간에 기대어 허공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장면이 CCTV에 찍힌 뒤 12시간 후였다.

정 대표는 쿠팡에서 가구와 가전제품을 주문하면 배송해서 설치까지 해주는 로켓설치 대리점을 운영했다.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이튿날 배송하는 것이 계약조건이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에 물량은 급증했지만 기사를 구하지 못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로켓설치 주문 마감 시간이 오후 2시에서 자정으로 늘어나면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창고 직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밤 12시까지 주문 컷오프해서 (본사에서) 물량 내보내면 그 다음에 배차를 하고 그러면 우리는 그 시간 안에 무조건 해줘야 된다"며 "대표님 같은 경우는 전혀 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름철을 앞두고 에어컨 주문이 늘면서 배송 물량이 최대 2배 가량 증가, 노동강도는 더 세졌지만 기사까지 구하지 못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숨지기 전날 밤 직원과의 통화해서도 이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와 죽을 것 같다. 죽을 것 같아. 고비다 고비. 한 일주일째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서울노동청 앞에서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는 쿠팡에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서울노동청 앞에서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는 쿠팡에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MBC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크고 무거운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창고를 가득 채웠다.

한 직원은 "물량이 폭주해도 당일 배송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배송기사를 구해 아침 일찍 물건을 내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누군가 진짜 죽어야 끝날 것 같다. 그런 얘기를 사실 되게 많이 했다"면서 "혹시나 내일 어떤 기사가 쉰다고 하면 어떡하지. 계속 24시간 긴장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쿠팡이 약속하는 배송 예정일은 PDD라고 한다. 주문 이튿날까지 배송을 못 해 PDD를 못 지키면 위탁 운영 계약은 해지될 수 있다.

해지 기준은 월 0.1%, 1000개 중 1개만 늦어도 안 된다. 택배 로켓배송은 0.5% 이지만 가전·가구 대리점에 적용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직원은 "(배송 지연) 이슈가 나게 되면 본사에서 계약서를 운운하기도 하고, 전국에 대표님들 다 모아놓고 (화상) 회의를 진행하고 계속 그랬다"며 "능력없는 죄인이 된다"고 말했다.

▲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과 환경노동위원회 등이 남양주2캠프 앞에서 쿠팡의 행동을 규탄하고 있다. ⓒ 김주영 의원실
▲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과 환경노동위원회 등이 남양주2캠프 앞에서 쿠팡의 행동을 규탄하고 있다. ⓒ 김주영 의원실

정 대표는 충청권을 담당하는 청주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숨지기 2주전 경기 오산 대리점까지 영업을 확장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 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대리점은 배송기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쿠팡 본사직원과의 통화해서 "그걸 맡아 가지고 지금 돌아버릴 것 같다"며 "지금 이 시기에 걱정돼요. 진짜. 기사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점 운영을 그만두려 해도 계약 때문에 최소 3개월은 버텨야 했다는 것이다.

▲ 세이프타임즈가 쿠팡에서 주문해 받은 37.6㎏에 달하는 이동식 에어컨. 배달 규정을 넘은 물건이 배달해 노동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 세이프타임즈가 쿠팡에서 주문해 받은 37.6㎏에 달하는 이동식 에어컨. 배달 규정을 넘은 물건이 배달해 노동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고인의 아내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오산이 피해가 지금 너무 크니까 오산을 접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손해배상 비슷한 금전적인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가 목숨을 끊은 1일은 오산 대리점 운영을 시작한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다.

정 대표는 이날 배송 기사 13명 중 8명만 출근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최소 40건 이상 배송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다.

쿠팡 CLS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정 대표 사망은 당사 위탁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사유로 알고 있다"며 "악의적인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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