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아파트 경비원 업무를 시작한 지 5개월만에 실명한 A씨에 대해 과로로 인한 산재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 법원
▲ 법원이 아파트 경비원 업무를 시작한 지 5개월만에 실명한 A씨에 대해 과로로 인한 산재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 법원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휴식이나 수면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경비원의 실명이 '과로로 인한 산재'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4-1행정부(재판장 이승련)는 26일 아파트 경비원 업무를 시작한 뒤 5개월 만에 '양측 시신경병증'을 진단받고 실명한 A씨에 대해 지난달 24일 요양 불승인 처분을 내린 근로복지공단에 이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A씨의 실명이 과로·스트레스 등으로 발생한 업무상 재해여서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1심 판결을 이어간 것이다.

A씨는 2017년 10월 25일 아파트 경비원 업무를 시작한 지 5개월 후에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도 뿌옇게 보이는 증상을 겪었다.

A씨는 이틀 뒤 시신경병증 진단을 받았고 결국 양쪽 눈이 실명됐다. 이듬해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A씨의 환경적 요인이나 과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 실명에 과로와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A씨는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24시간 일하는 격일제 근무를 했고, 1주일 평균 59.5시간 일했다.

수면 시간 5시간이 주어졌지만, 택배나 민원 등으로 제대로 잠들기 어려웠다. 눈에 이상을 느낀 날에도 큰 눈이 내려 A씨는 새벽 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제설 작업을 했다.

재판부는 A씨의 근로 계약이 '주민들의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돼 개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를 해지사유로 들고 있는 점도 스트레스와 과로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과로를 뇌심혈관계 질환과 관련해서만, 안과 질환은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해서만 규정한다.

형식적 요건만 적용한다면 A씨의 안과 질환처럼 뇌심혈관계 질환이 아닌 경우엔 스트레스 상황이나 장시간 노동 등에도 과로 산재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근로복지공단이 법원 판단대로 과로 산재를 실질적 업무 환경을 기준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률 관계자는 "시행령에 제시된 요인만을 제한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과로 산재 판단 기준을 재확인한 판결"이라며 "애초 공단이 제대로 판단했다면 재해자에게도 긴 소송 시간이라는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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