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원인과 결과로 세상을 해석합니다. 과학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우주와 지구라는 결과가 무엇이 원인이 돼 나타난 것인지 설명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에는 그 현상을 불러일으킨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일이 중요한 작업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주가 왜 시작됐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빅뱅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대폭발의 원인은 여전히 모릅니다.

인간의 삶이 대부분 지구 위에서 이어지고 있기에 빅뱅이 만든 결과물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도 무수한 인과의 연결 고리가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무시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란 이름을 지닌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 세계에는 인과로 설명되지 않는 부활로 만들어진 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이 영역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펼쳐지는 세계이기에 과학적 인과론의 잣대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정이신 논설위원
▲정이신 논설위원

과학에서 인과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의 선후를 수학적으로 엮은 것입니다. 대개 사건의 앞에 있는 부분이 원인이고 뒷부분이 결과인데, 이처럼 앞뒤를 명확하게 따지는 과학에서 인과가 잘 연결되지 않는 종교적 진리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진리를 인간이 만든 추상화라고 일부가 그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그러나 빅뱅이 일어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게 한쪽 다리로 서 있는 인간의 한계적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적 사고와 더불어 종교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태도를 수학적 합리성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과학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빅뱅이 왜 시작됐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종교의 유추적 설명이라도 있어야 인간의 삶이 풍부해집니다.

과학과 종교는 저의 삶을 이루고 있는 중추이기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습니다. 요즘은 아예 이 둘을 왼손·오른손처럼 뇌에서 적당하게 혼용해서 씁니다. 둘을 뇌의 좌우에 저장해 두고, 필요에 따라 적정비율로 혼합해 쓰다 보니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저에게 보이지 않는 인과관계를 늘 기억하라고 합니다. 논증과 실험으로 진리를 규명하는 과학의 시각으로 볼 수 없는 인과의 연결 고리가 있는데(요한복음 9:1∼3), 이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영접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받아들인 인간은 부활의 은혜를 덧입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고 합니다.

더불어 저는 과학이 만들어낸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이 없으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쓰인 성경을 한글로 번역된 종이책으로 받아 읽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 둘이 제 삶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이 됐기에 둘을 모두 소중하게 취급합니다.

한 가지 시각으로만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본 후 몇 년을 끙끙대며 기도해 보니, 제 삶에도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보지 못했을 뿐 제가 살아온 길에도 보이지 않는 관계의 연결 고리가 무수히 널려 있었습니다. 보지 못했기에 그냥 밟고 지나왔을 뿐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세계로 설명되든, 이미지를 차용한 추상적 세계로 이해되든 종교는 그것이 우리 삶에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 세계를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연결 고리가 불러오는 고난을 그 사람 혼자 감당해야 하기에, 결국 그 사람만 외로워진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벼락처럼 갑자기 다가온 인과의 연결 고리 때문에 길에서 홀로 떨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럼 자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관계망을 종교적 진리로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유레카'나 '심 봤다'를 외치게 될지.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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