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扁鵲)에게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두 형이 있었다고 합니다.

형제가 모두 의술의 대가였는데, 큰형은 병에 걸리기 전인 미병(未病)단계에서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환자를 없애 의사가 필요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어떤 사람이 환자가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썼습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병일지라도 일단 병에 걸리고 나면 고통과 흔적이 남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현대에서 말하는 예방의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병을 고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편작의 작은형은 그보다는 의술이 조금 떨어져 초기 단계에서 병을 고쳤습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먼저 작은병을 앓지만 사람들은 큰병이 될 작은병의 징후를 잘 모릅니다. 그는 큰병으로 옮아가기 전에 병이 작아서 사람들이 징후를 무시하고 있을 때 이를 알아 봤습니다.

그래서 큰병이 되기 전에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그를 그저 소소한 병을 고치는 아마추어 의사라고 했습니다. 의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편작보다 빼어나서 병이 작은 상태일 때 알아보고 고쳤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의술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막내인 편작은 병이 극심하게 진행된 상태의 환자들을 주로 고쳤습니다. 그래서 불치병을 고치는 명의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편작의 집안에서는 그를 제일 하수로 취급했습니다.

의술이 전혀 권위를 행사할 필요가 없는데, 편작이 무리하게 의술로 권위를 행사했다고 그의 집안에서는 그를 제일 하수로 여겼습니다.

쑨리췬(孫立群), 왕리췬(王立群), 하오완산(郝萬山), 지롄하이(紀連海), 첸원중(錢文忠)이 쓰고 류방승이 옮긴 <<천고의 명의들(원제: 천고중의고사(千古中醫故事), 옥당출판사>>에 있는 이야기 한 대목을 풀어서 옮겨 봤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전해 내려옵니다. 조선시대 어떤 사람이 병을 잘 고치는 스승 밑에 들어가 10여년을 수학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오늘은 환자가 와도 절대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전은 스승의 말에 따라 환자를 받지 않고 잘 넘겼습니다. 해질 무렵이 되니 어떤 여자가 간난 아기를 품에 안고 와 곧 죽게 생겼다고 진료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온 여자는 곧 죽어가는 자기 아기를 보고 의원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목메어 울어대며 찾았습니다. 제자가 보니 자기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나가면서 오늘은 누가 찾아와도 절대 진료하지 말라던 스승의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거절하려다가 자기라도 손을 대지 않으면 아기가 죽게 생겼기에 울며 매달리는 여인의 얼굴을 보고 아기를 치료해 주고 말았습니다.

밤이 되자 스승이 돌아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제자는 망설이다가 해질 무렵에 있었던 일을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대노했습니다. 스승은 여자에게는 그 아기가 자라서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가 될 것이기에,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아서 아기를 치료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어리석은 모정에 휘말렸으며, 원수가 될 자식을 키우게 해 결국 인륜을 더 흐리게 만들었다고 제자를 질타했습니다.

"네가 명의(名醫)는 될 수 있으나 신의(神醫)는 될 수 없겠다. 너를 신의로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네게 주어진 운과 복이 그 정도이니 여기서 너를 내보내야겠다. 이제 나를 떠나거라."

이것이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다음날 아침 그가 깨어보니 스승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몇 날, 몇 달을 기다려도 스승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봅니다. 병을 죄로 바꿔봅니다. 목사는 어떠해야 할까요.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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