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가르치기에 과목은 국어·독서·논술 한 과목뿐입니다. 교육과정도 단순합니다. 매주 마다 하루를 정해 책읽기(Book concert) 강독과 독서 토론을 하며 국어 수능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책읽기를 학생들이 익히게 합니다. 이를 통해 차별 받아 죄인처럼 취급 받았던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건져 올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같이 취급하게 하고, 자신과 전혀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법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 나라를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다른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다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인간세(人間世) 바깥에서 인간세를 향해 들어오시는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럼 필연적으로 교만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나 선택에 상관없이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걸음을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아나돗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알면 너도 알고, 네가 알면 나도 아는 수준이 돼야 억지가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너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그것을, 자기들이 가진 보화가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먼저 학생들이 그들의 이야기와 언어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학생들이 보편적 인간이라 불림 받는 사람들과 나란히 걸어가며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대화가 통합니다. 사회가 말하는 것을 학생들이 알아듣습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법은 제가 가르칠 수 있었지만, 연주 자체는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야금의 명인으로 유명한 고 황병기 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법은 선생이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주의 깊이는 학생 본인이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 세대로서 후세들에게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는 후세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아나돗학교에서 했던 실수가 있었습니다. 공부하는 법은 제가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공부는 학생인 그가 해야 하는데, 처음에 안타까운 마음에 공부까지 대신해 주려고 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고 했었습니다. 그랬다가 일이 엉켜 오해를 불러 일으켰었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고 안타까워도, 북한에서 혼자 왔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임하실 성령님의 몫은 남겨둬야 합니다. 답답하고 애처로워 보여도 학생들 스스로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더라도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학생들이 살 집은 결국 그들이 지어야 하고, 누구와 같이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그 집을 짓기 전까지만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집 짓는 것까지 대신해 줬다가 나중에 학생들에게 집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대안학교이기에 다행히 가르치는 것의 범위도 제한적입니다. 영어나 수학은 후학들이 저보다 더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비전은 누구든지 경험한 만큼,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는 만큼만 알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돗학교에서는 이 둘을 교육과정에 꼭 포함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나돗학교에서는 이 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차가운 열정과 풋풋한 노력이 가장 좋은 교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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