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귀인데, 제가 아나돗학교에 오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창의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려면, 자신이 어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얼마만큼 준비했는지 보여줘 그 대학에 합격하려면 먼저 책을 제대로 읽고 글 쓰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일은 자기보다 나은 상대, 고수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읽은 후에는 뭐라도 써봐야 합니다. 보고 들은 후에는 자꾸 그렇게 한 만큼 자기의 글을 써봐야 책과 대화가 가능하고 내 감각으로 보고 들은 것들의 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방향의 소리만 듣게 되고, 드러난 내 감각으로만 사물을 파악하게 됩니다.

공부는 온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대부분 머리로만 공부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오래 가지 못 합니다. 초등학교·중학교 때 학교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아예 내려놓는 것을 여럿 봤습니다. 이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도 피동적으로 학업을 따라가다가 책 읽는 것을 내려놓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눈으로만 익히고 직접 글로 연습해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책만 읽고, 듣고 보기만 하고 스스로 써보지 않으면 음식을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배설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은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건강이 아주 위험하다는 적신호입니다. 공부는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몸이 따라 오지 않고 배설이 없는 공부는 뇌를 혹사시키는 가혹행위일 뿐입니다.

의과대학 입학시험에서 수학 성적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에세이를 중시합니다. 또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한 사람들에게 주는 '루이스토마스상'도 있습니다. 이 상은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했는데, 선정위원회는 과학을 인문학과 연결한 사람들을 발굴해 그들에게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Scientist as poet)'라는 칭호를 수여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서구 고등교육의 근간에는 수사학(修辭學)이 있었습니다. 글로든 말로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그들은 끊임없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도 조선시대 선비 전통에서는 글을 잘 쓰고 시를 지으며,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흐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아나돗학교에 온 학생들은 처음에 대부분 저에게 '자신은 문제 풀이법을 익히는 것이 더 시급한데 왜 글쓰기를 배워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모든 실력은 최종적으로 글쓰기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글로 쓸 수 없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효용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학생들도 있고, 거부하고 떠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대학생이 돼 글쓰기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메모라도 꼭 써봐야 합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력을 강화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써봐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지닌 숨겨진 능력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책을 읽어도 자기 생각이 없어지는 어리석음 방지하기 위해, 생각의 근력(筋力)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쓰기 위해 먼저 잘 읽어야 합니다. 잘 읽지도 않았는데 좋은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교육혁명은 거창한 구호나 시스템의 정비에만 있지 않습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단순함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교육혁명의 시작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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