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고생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마태복음 9:36). 이 구절에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입니다. 내장을 뜻하는 스프랑크논에서 유래한 말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헬라어의 어감을 살펴봤을 때, 이 말은 예수님이 목자가 없거나 핍박받던 사람들을 연민의 눈길로만 보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에 먼저 공감하신 후(마태복음 5:3),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기자 마태는 이 단어를 써서 예수님의 언행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은 아무런 공감 없이 단순한 연민으로만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번역된 단어의 어감에 차이가 있기에 우리말 성경으로만 읽으면, 예수님이 느끼셨을 마음이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신약성경 사본을 기록한 헬라어를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같이 나눴던 고통의 강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십여 년 전에 하나님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그래서 우리더러 껴안고 같이 살아가라고 하신 북향민을 보면서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답게 그들을 연민(sympathy)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의 아픔에 먼저 공감(empathy)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민과 공감은 영어로 보면 뒤가 '-pathy'로 같습니다. 그래서 공감이 연민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연민과 공감은 엄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나누는' 것과 '나눠주는' 것은 다릅니다. 연민은 주체와 객체를 명확하게 구분해 내 것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었는데,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던 그들의 몫이기에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그 뒤 나오는 떡잎은 두 잎이지 한 잎이 아닙니다. 한 몸에서 처음부터 두 잎으로 태어났지만, 그들이 아직 자신의 몫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그들의 몫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아낸다'고 합니다. 생산적인 통일을 위한 '통일투자(投資)'를 소비적인 통일을 위한 '통일비용(費用)'으로만 몰아가려는 상황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공감을 통해 그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과 다른 한반도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북한 소식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아늑한 자기만족만 누리면 안 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로 우리가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떡잎은 원래 서로 외롭지 않게 섬기며 살라고 둘이었습니다. 두 개의 떡잎은 연민이나 성공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공감으로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둘이 온전한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아나돗학교를 시작했을 때 활동방향이 어떤 것이냐고 질문이 쏟아졌었습니다. 우리는 공존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공존이란 '너희들끼리(북향민) 공동체를 만들어 잘 살아라'가 아니라 '너희가 만들어야 할 공동체를 만든 후, 너희가 내야 할 빛을 내어 너와 내가 서로 배우며, 서로 같이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길이 어두워 아나돗공동체가 꿈꾸는 공존의 새 날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앞이 꽉 막힌 동굴이 아니라 끝이 있는, 끝에서 햇빛을 볼 수 있는 터널이기에 길을 가고 있는 발걸음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저 끝 날 같이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길을 걷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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