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이데거(Heidegger)가 했던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도 됩니다. 동물 중에는 인간과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이들이 있지만, 기호화된 언어체계로 만든 이야기는 인간만의 창작품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덕분에 창세기를 설화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창조 이야기의 시혜를 듬뿍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역사에서도 이야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역사 기록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훌륭한 지침이 됩니다.

늘 우리 주변에 좋은 이야기가 차고 넘쳐 나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욕심인지라 저의 바람과 달리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생겨납니다. 양도 엄청나서 때로는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더 많이 만들어집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마음의 문은 열어놓고 살라고 있는 것인데, 이 문에 빗장까지 걸어 닫아버리니 사회가 소통이 안 됩니다. 집의 대문은 열쇠나 손가락의 터치로 열 수 있지만, 마음의 문은 이것으로 열 수 없습니다. 자신은 이미 다 안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가진 마음의 빗장은 진짜로 열기 어렵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특정한 시각만을 고집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그들을 통해 보건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한쪽만 헤아리는 극단을 더 많이 찾습니다. 새가 양 날개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쪽을 다 헤아리는 것보다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을 더 편리하게 생각합니다. 사이비·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면이 아주 심합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을까'를 70여년 동안 추적 연구했던 자료를 토대로 베일런트(G. Vaillant)가 쓴 <<행복의 조건(이시형 감수, 이덕남 옮김)>>을 보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옵니다. 사람이 생의 마지막 무렵쯤에 이르면 이런 차이들이 줄어들어 한쪽만 택하는 편리함을 선호하거나 더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극단적인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해악의 결과물이 축적돼야 이런 문제가 풀리는 셈입니다.

이 책에 나온 사례 분석의 결론을 가만히 보면 한 가정에 노인의 지혜가 필요하고, 원로의 목소리가 사회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말과도 맥이 통합니다. 저는 이것에 더해 좋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의 화단을 장식하게 되면 사회에는 마음을 닫은 사람보다 연 사람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배척보다는 서로를 위해 대화하는 풍경이 그려질 것입니다.

좋은 길과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가는 길은 무지에서 오는 길이기에 좋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으로만 채색해서 믿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이 경우 자신이 해야 할 일마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팔짱만 끼고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은 이 둘 사이에 있습니다. 둘 사이에 있는 길이기에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눈으로 보면 좋은 길은 둘 사이에 있지 한 쪽에만 있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정의)가 만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 교훈에 따라 둘 사이에서 둘을 결합한 길을 가야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넘쳐나 한쪽으로 치우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풍성해 집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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