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8>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국제행사가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 국제행사라 함은 5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외국인이 참여하고 외국인 참여비율이 5% 이상(총 참여자 200만 명 이상은 3% 이상)인 국제회의, 체육행사, 박람회, 전시회, 문화행사, 관광행사 등을 말한다.(기획재정부 훈령 제260호 제3조)

2015년에만 해도 부산 국제영화제, 평창 세계산불총회,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이 개최됐다.

이런 큰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무부처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외국어 능력을 보유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적게는 몇 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시민들의 참여가 요구된다. 국제행사는 국내행사와는 달리 규모와 내용면에서 훨씬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원봉사 단체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주역은 바로 자원봉사자입니다”라는 말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행사의 주역이라는 거창한 멘트와는 다르게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겉으로는 국제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선하게 기부하려는 자원봉사자들의 안전과 보건에 대해서는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문화나 의전에 대한 교육은 많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교육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필자는 매년 다양한 국제행사에 자원봉사자 또는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필자가 참여한 행사만 해도 2012년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 2013년 인천 아시아실내무도대회, 2013년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및 2015년 평창 세계산불총회가 있다.

필자가 하는 일이 ‘소방검열관’이다보니 매번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모든 진행과정을 안전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특히, <2012년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는 필자에게 자원봉사자들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석하는 방문객들의 안전과 보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총회는 ‘자연의 회복력’이란 주제로 무려 180여 개국에서 1만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국제행사다. 하지만 학술행사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서너 평 남짓한 의무실에는 말라리아, 어깨 탈골, 고혈압, 골절 등 하루에도 백여 명의 내외국인 환자들이 방문했다.

또한 흡연 장소가 따로 지정돼 있지 않아서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버리는 장면은 ‘자연의 회복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행사장을 가로 지르는 돌출된 전기 케이블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세미나 시작 전 비상구 안내조차 이루어 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직 육군대령 출신의 자원봉사자를 식음료 파트로 발령을 내고,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을 대테러 부서에 배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일부 특정국가의 통역을 담당하는 사람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적절한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안전에 대한 기본과 원칙을 지키자고 무수히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기본이고 원칙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국내행사든 국제행사든 무고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면 행사를 치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국제행사에 누구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한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다. 먼저 자원봉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서류가 통과되면 면접도 봐야 한다. 아무래도 국제행사인 만큼 영어면접은 필수다.

면접을 통과해 최종 합격이 되어도 몇 차례에 걸친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몇 단계 과정을 이수해야만 비로소 자원봉사자라는 명찰을 달고 현장에서 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선한 뜻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가 사전에 안전을 전파하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서 그들의 열정을 북돋아 준다면 대한민국으로써는 일석이조가 아닐까.

안전교육은 사람을 향한 배려와 사랑이 수반되는 일로써, 많은 예산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만 비로소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안전도 챙길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국제행사를 주관하는 각 주무부처는 국민안전처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안전과 보건부터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

소화기사용법, 심폐소생술, 제세동기(AED) 사용법, 감염병 예방안내 및 비상시 대피요령은 물론이다. 테러 발생 시 외국인들에 대한 동선안내 등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부디 자원봉사자들이 준비 없는 국제행사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각 지자체의 국제행사 신청 단계에서부터 ‘안전과 보건’을 우선으로 하는 타당성 조사와 세심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