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5>

“자신이 건넌 다리를 불태우지 마라 (Do not burn bridges behind you)” 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전쟁 중 군인들이 자신들이 건넌 다리를 적이 따라와 건너지 못하도록 불태운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리를 불태운 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와서 후퇴해야 할 때에는 이미 다리가 불태워져 있으므로 뜻밖의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저지른 섣부른 행동이 오히려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 것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눈 앞의 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큰 틀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미래에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객관적 검증 작업 없이 만들어진 정책은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

한 공직자가 민원인으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한 사람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조직 전체가 오해와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해서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의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이게 바로 다리를 불태우는 식이 되는 것이다.

이 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시절이었을 때에는 그저 선진국의 정책들을 벤치마킹하면 효과가 그만이었다. 가시적으로도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거라는 목표의식도 분명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9년 이후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이제는 누구를 따라가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객관식 문제처럼 몇 개중 하나를 고르면 정답이었던 속 편한 시절은 이미 지나가고, 이제는 대한민국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바로 소방방재청이 10년 만에 국민안전처란 새로운 조직으로 흡수된 일이다. 본래 소방방재청은 대한민국 소방만의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가 재난에 대비한 새로운 역할과 위상 정립을 소망하는 전국의 소방관들의 염원과 더불어 국민들의 서명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인내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소방방재청은 미처 결실을 맺을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만에 내려진 결과다.  

한편,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에게 국비를 들여서 해외에 연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가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얼마 안 돼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 외국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미처 전수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필요로 내려진 조치다. 이것은 해외연수의 본래 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또한,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구조대원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무직으로 배치해 구조경력을 단절시키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그에게 신임 구조대원들의 역량을 높여주기 위해 순회교육을 시킨다거나, 현재의 훈련시스템이나 교육자료들을 검토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보다는 그저 종이 한 장으로 쉽게 인사발령을 내 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들은 아직 현장 경험도 충분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상급부서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자기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앞에서 지적한 모습들은 모두가 고집스러운 편견이거나 혹은 오만에서 비롯된 성급한 결정의 단면이다. ‘진지한 토론을 거친 대다수의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온 정책이라면, 때로는 멀리 내다보고 효과적인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한 법이다.   

어느 세상에도 완벽한 전략과 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아무리 디지털화된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자는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소방이 내리는 매순간의 결정은 결국 ‘소방관들의 헌법’인 대한민국 소방법 제1조에서 말하고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소방의 사명과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없이 내리는 쉽고, 빠르고, 편리한 결정때문에 어쩌면 소방 스스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다리를 스스로 불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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