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아빠·아버지·아버님·하나님
[정이신 칼럼] 아빠·아버지·아버님·하나님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2.02.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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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네 권의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인 게 마가복음입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한 서술이나 해석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경우 최초로 그 사건을 기록한 글을 잣대로 삼는데, 마가복음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온 기록을 비교할 때는 마가복음에 우선권을 줍니다.

이런 속성을 갖는 <마가복음 14:36>에 나온, 예수님이 하나님을 부를 때 썼던 '아바'는 헬라어가 아닌 아람어로 주로 어린아이의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도 아빠로 합니다. 훗날 이 말의 용도가 확장돼 AD 1세기부터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녀들이 아버지를 아주 친근하게 부를 때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어감은 아버지·아버님보다 아빠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여러분을 어떻게 불러줬을 때 가장 행복하십니까? 고대 유대 문헌을 보면 존경하는 랍비를 제자들이 아바라고 불렀던 경우도 있습니다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거의 최초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어린아이가 아빠를 향해 부르는 호칭을 쓰며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 기도에는 위장된 품위나 체면이 한 톨도 없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마냥 좋아서,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아이 예수님께만 통용되는 의사소통 체계로 기도했기에 이전에 했던 기도와 달랐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주(主·Lord)란 뜻의 아도나이(adonai)를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부터 새롭게 만들어서 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쓰셨던 호칭이 너무 당돌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을 감히 아빠라고 부르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인은 글을 쓸 때 자음으로만 표기했는데, 우리에게 전해지는 야훼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신성한 이름을 자음만 쓴 채 제대로 발음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음가를 잘 모릅니다. 야훼는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음 표기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 만든 것입니다. 야훼라는 호칭은 성경을 히브리어·헬라어로 읽자던 기독교 개혁기 이후에 지지를 받았고, 오늘날 많은 성경 번역본에서 이 발음을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아빠와 라틴어 abba는 발음과 의미가 같습니다. abba는 아버지란 뜻인 히브리어 압(ab)의 시리아어 형태인 abba에서 온 말로, 오래전 지중해 동쪽 지방 수도원에서는 수도자들이 영적인 스승을 abba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말이 베네딕도수도회에 수용돼 사용됐고, 이후 지중해를 건너 서방 수도원에 소개됐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원장의 호칭인 아빠스(abbas)로 굳어졌는데, 라틴어이기에 여성형은 아빠티사(abbatissa)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엄마·아버지란 호칭을 주로 썼습니다. 어머니란 호칭도 가끔가다 썼지만 주로 엄마를 썼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제 딸아이 앞에서 엄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빠라는 호칭을 쓴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아버지나 아버님을 썼고, 텔레비전에서 봤던 드라마에서 아빠라는 호칭을 쓰는 탤런트들을 보고서는, 철없는 생각에 그들이 경박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아빠라는 호칭을 거리낌 없이 쓰는지, 텔레비전에 방영된 드라마의 장면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 소견과 달리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아빠·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워 보이는 존재가 부모일 것입니다. 부모는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서 다 해 줄 수 있는,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일 것입니다.

또 이런 말로 부모를 부르는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무한한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마음에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색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까지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게 됐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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