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인생이 소설이라면
[정이신 칼럼] 인생이 소설이라면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1.11.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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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공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살핌이 없어진 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적성이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고려해서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해서,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간 학과였습니다. 그래도 1학년 때는 그럭저럭 버텼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공공부가 시작된 2학년부터는 수업 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교재에 나온 용어의 개념이 뭔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암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암기에 한계를 느끼고 그만뒀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는 전공필수과목도 아닌 전공선택과목에서 저 혼자 낙제점을 받고,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병역을 위해 입대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청소년 단체에서 일하면서, 제가 겪었던 어려움의 원인이 뭔지 궁금해 관련 자료를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독서를 통한 문장 해석능력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 겪었던 어려움은 단순히 적성이 맞지 않아서 그랬던 게 아니었습니다. 문자에 숨겨진 의미와 문장 해석능력, 즉 문해력이 부족했기에 나타난 일이었습니다.

모 대학교수가 문해력에 관한 글을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유학 가서 처음에는 잘 따라가지만, 본격적인 공부로 들어가면 힘들어하는 이유가 문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문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학생들이 실험을 통해 과학 데이터를 정리한 후, 그게 뭘 의미하는지 학문적으로 해석해 외국어로 된 문장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한국에서 공부한 흔적 때문에 독해는 잘하지만, 외국어로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는 문해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우수했던 두뇌들이 유학 가서 겪는 어려움 뒤에는 잘못된 공부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들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문해력을 갖추게 해야, 노벨상을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빨리 나올 수도 있습니다.

대학입시라는 결전장을 앞둔 투사가 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문해력에 관한 강의를 하면, 별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합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제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선생님, 학교에서는 그런 방법을 잘 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방법을 쓰면 성적을 많이 올릴 수 있습니까?"

장기적으로 문해력이 없으면 본인만의 실력이 갖춰지지 않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과학실험의 데이터를 다 만들어 놓고도, 자료가 주는 메시지를 해석해서 인문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문해력은 책을 읽는 것에만 쓰이지 않고, 삶을 해석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소설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흐름을 파악하는 당신의 해석능력은 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소설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어느 시기에 들어섰는지 파악할 수 있는 해석능력이 없으면, 자기 인생에 늘 위기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겨우 발단을 거쳐 전개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자기 인생의 결말이 다가왔다고 착각해 다 포기하고 주저앉습니다.

책뿐 아니라 인생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인생이 위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기에, 이걸 갖춰야 패자부활전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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