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팔복과 구룡
[정이신 칼럼] 팔복과 구룡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2.04.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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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걸 핵심적으로 전한 게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고, 이 중에 <마태복음 5∼7장>에 나온 산상수훈은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분이 말씀한 가치가 우리네 삶 속에서 전반적으로 확장돼야 하는데, 이에 관한 지침이 여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복인 성령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결이 다른 것으로, 인간이 생각한 것으로만 추구하다가 폐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에 관해 어떤 게 하나님이 주신 복인지 말씀했고, 그분이 말씀한 걸 마태가 8개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팔복(八福)에 관한 말씀을 산상수훈의 백미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에게는 8보다 7이라는 숫자가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또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을 보면 8개의 복이라고 말하기 힘든 간단한 서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한 팔복이란 게 마태가 그분의 말씀을 정리해서 한 곳에 모아 기록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게 숫자를 따지다 보면 피타고라스가 생각납니다. 피타고라스는 숫자로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 신비주의학파의 창시자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직각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당시에는 아무나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걸 배우려면 피타고라스학파가 운영하는 종교적 제의 집단에 들어가서 공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사고는 동양에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 김만중이 지은《구운몽》이나 끝없이 높은 하늘을 구만리 장천 등으로 표현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9에 대한 사랑은 동양인에게 널리 깔린 정서입니다. 또 숫자로 우주의 변화를 논한 동양인 중에는 9를 남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10, 100, 1000 등을 완벽함의 상징으로 보고, 여기서 하나를 뺀 9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가 모자라서 마음이 더 가는 숫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지명ㆍ인명에 구(九)를 집어넣은 사례가 드물지 않은 것도 이런 영향 때문입니다.

이런 이해를 토대로 어떤 사람은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한 문장에 이어지는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를 구복(九福)이라고 합니다. '아홉까지 가면 욕심이 좀 많은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지만, 말한 사람의 논조를 보면 복의 종류가 용 9마리가 있으면서 서로 다투는 형국이 아닙니다.

바울은 기독교인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특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특권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에 하나를 더해 구복을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십 원보다 좋은 게 구원'이니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고, 또 이런 성격의 복이라면 하나 더 추가해도 될 성경적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돼 하나님이 허용하신 추가된 복을 찾을 때는, 조선 후기 임상옥이 썼던 계영배의 교훈처럼 차서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는 게 낫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9마리의 용을 뜻하는 구룡(九龍)처럼 되면, 내 안에서 용들끼리 욕심을 부려 싸우게 되고, 이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됩니다. 정의를 위한 고난을 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게 구복이니, 8개를 넘어선 복을 구할 때는 내 안에서 복이 조화를 이뤄 용들처럼 싸우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충분하면 다른 복을 찾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그걸로 인해 내 안의 용들이 서로 싸웁니다. 8개를 넘어선 복을 찾을 때는 성경 말씀처럼 그걸로 인해 내 안에 있는 용들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십시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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