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우리는 그때보다 더
[정이신 칼럼] 우리는 그때보다 더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22.01.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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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의 배수구가 얼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영상에 나온 방법대로 헤어드라이어로 배수구, 흡수구에 있는 얼음을 녹이고,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온수로 바꿔 작동하는 법을 들은 후 그대로 조치했습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세탁기가 돌아갔습니다. 세탁기가 작동되도록 간신히 조치해놓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저는 이곳 서울보다 훨씬 아래인 남도의 순천이 고향입니다. 이곳보다는 따뜻했지만, 그래도 마루에 둔 걸레가 얼어 방을 닦지 못했고, 뒷마당에 널어놓은 빨래가 마르지 않고 얼어붙어 방안에 가져다 놓았던 때가 꽤 많았습니다.

조금만 물을 틀어 놓으면 수도가 얼지 않는데, 수돗물만 아낄 줄 알았지 어는 걸 막는 법을 몰라 겨울이면 숱하게 얼었던 수도 등 지금보다 참 어렵게 살았습니다. 때로 세수한 물을 버리지 말고 당신에게 달라며 엄마가 찬물로 빨래를 했었는데, 철부지였던 저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걸 깜빡하고, 세수한 물을 그냥 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얼마나 행복한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루 세끼를 다 먹고 사는지를 물었습니다. 하루 세끼만 제대로 먹어도 마냥 기뻤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는 양을 줄이고 있지만, 그때는 그게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는데, 예전의 제가 그때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진 지금의 제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때보다 행복하니.' 여러분은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지금처럼 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행복하지 않고 헛되다'의 함정은 옛날보다 오늘날이 더 깊고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자신의 영화를 비교했던 대상은 중동에 있었던 주변 국가의 왕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비교 대상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인입니다.

2명 중에 2등, 10명 중에 10등, 1,000명 중에 1,000등이 누리는 상대적 박탈감은 2등이나 10등보다 1,000등이 더 큽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불필요한 것까지 비교하지 말라고 권면하지만, 해 아래 세상에서 헛된 걸 추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에는 늘 비교우위가 존재합니다.

비교우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특정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합니다. 자기가 솔로몬보다 더 화려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이건 절대로 기억 세포에 저장하지 않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은 솔로몬이 누렸던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비교 대상이 너무 많아서 불필요한 탄식은 솔로몬보다 더 많이 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수행하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진정한 붓다는 타고난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똑같은 존재이기에 자기 삶의 터전이 곧 최고의 수행 장소가 됩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만 마음대로 붓다가 돼 보겠다고, 자기만의 계획을 짜서 실행에 옮기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은 특정 인간이 남다른 혈통으로 태어났고, 연단과 수도 생활을 많이 해서 메시아(Messiah), 진인(眞人), 상제(上帝), 이긴 자, 수령과 같은 백두혈통이 됐다는, 아주 우스운 이야기가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음울한 21세기에, 현대인이 찾는 대증 치료법이기도 합니다. 저런 사람들이 나타남으로 인해 저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해졌습니까. 비슷한 예로 그토록 원하던 사람이 권력을 잡아서 당신의 삶이 좀 나아졌습니까.

해 아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고, 그 일이 이뤄지는 때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 해도 대단한 지혜를 소유한 것입니다. 이 지혜를 얻었다면 굳이 특정인이 자신의 소망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지금이 그때보다 살기만 편할 뿐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내가 뭔가를 기억하지 못해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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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 2022-01-14 12:47:29
분명 지금의 삶이 예전보다 편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가진 것들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