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만약에'라는 선물
[정이신 칼럼] '만약에'라는 선물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2.02.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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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만약에' 말입니다.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한반도에서 살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렵니까. 인간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근원의 세계가 있어서, 그곳에서 우리의 삶이 신령한 몸으로 계속된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먼저 하렵니까.

당신이 지금 최고로 여기는 쾌락이 한계와 후유증을 지닌 것이기에, 그것으로 인한 어려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당신은 계속 그것에 몰두하렵니까. 이 말이 '설마 그렇게 되겠어'나 '혹시 ∼가 된다면'이란 가정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미래의 당신이 현재의 당신에게 직접 묻는 것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렵니까.

보편적 인간답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남한으로 온 북향민 제자가 있습니다. 그가 산학협동프로그램에 따라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으면서 직장을 다녔다면서, 자신이 받은 첫 월급으로 사다 준 셔츠를 입었습니다. 그 위에 다른 대학을 다니는 북향민 제자가 장학금을 받았다며, 고맙다고 선물한 카디건을 걸쳤습니다.

이렇게 차려입고 나가는데 갑자기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통 큰 통일'을 이뤄 북한에서 온 재생이 남한의 선생에게 배우고 있는데, 저 위에 있는 분들은 자기 것도 아닌,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에 집착해 '작은 교류'도 하지 않고 싸우는 이유가 뭔지 진짜 궁금해졌습니다. 저분들에게는 '만약에'가 없어서 그런가요.

어둠의 세력이 하는 유혹은 후회를 남기지만 하나님이 주신 연단은 이해를 낳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내게 주어진 연단이 꼭 다가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연단을 받는 이유를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희미하게만 압니다. 분명한 건 그게 의를 위한 연단이라면 언젠가 그 이유를 성령님이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예수님이 주신 부활의 희망을 예언자적인 상상력으로 바라보며 '만약에'를 마음에 품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 공동체 교우들은 그 사람의 연단을 같이 나눠야 합니다. 연단 받는 이들에게 불필요한 말로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자극하지 말고, 그들과 같이 울면서 연단의 아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게 성화 과정에서 연단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만약에'를 마음에 품고 저 끝, 부활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엄마가 북한에서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수용소에 갇혔다는 북향민 재생, 믿었던 사람들에게 계속 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가 된 교우가 제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죽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간다고 하지만, 나쁜 사람은 살아서 어디든지 가지 않나요. 왜 좋은 일에는 항상 끝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쁜 일은 안 그렇잖아요. 나쁜 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그런데 좋은 일은 너무 금방 끝나버려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처럼 무책임한 인류와 끝없이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때 저도 제가 태어나 사는 시공간을 책임진다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도움만 받아놓고, 무책임하고 불성실하게 그 현장에서 도망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라고 생각하며 돌이켜 보니, 도망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현장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이걸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뒤 신앙공동체와 같이 걸었더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제게 주어진 몫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삶의 기초 단위인 공동체성을 잊어버렸을 때 국가와 교회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만약에'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의미입니까. 제게는 이게 하나님의 선물이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 아니기에 제 몸에 들여놔도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이제 예전에 제게 하소연했던 사람들과 이걸로 조그만 위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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