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방금 이카루스가 바다에 빠졌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버지인 다이달로스가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면 안 된다고 그토록 당부했건만 철없는 아들은 부모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강한 경고의 말은 결과의 복선으로 작용했다.아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아버지는 지금 어딘가에서 이 끔찍한 장면을 보고 있었을 터.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천하에 만능 재주꾼 다이달로스도 속수무책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다니, 망연자실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하지만 그림 속 어디에도 다이달
그림에 보이는 화사한 꽃잎들은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델란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던 해 그가 보았던 마지막 봄이었다.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몬드 나뭇가지가 마음껏 굽어져 펼쳐있고, 그 위에 순수를 옷 입듯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했다. 어쩌면 저리도 화사한 행복을 몇 그램도 안 되는 물감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전에 말한 대로 아기의 이름을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 지었어. 우리는 아기가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화가의 삶을 시작한 후 유일하게 자신을
"당장 여길 떠나버리겠어!"자신과의 말싸움 끝에 고흐가 귀까지 자르며 난동을 부리자 고갱은 그나마 애써 유지해오던 인내심이 바닥을 치는 걸 느꼈다. 사나운 짐승처럼 울부짖는 고흐를 더 이상 봐주다간 자신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지긋지긋한 이 노란집(아를에 있는 고흐의 화실)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고갱은 허겁지겁 짐을 싸서 파리로 향했다. 고흐의 동생 테오가 파리에서 잘나가는 아트디렉터가 아니었다면 고갱은 절대로 '아를에 있는 형에게 가달라'는 테오의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고흐와
(세이프타임즈 = 조경희 전문위원)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불경스러울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생경함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탓도 있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하는 의문의 패배감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어떤 이유에서든 이 그림 앞에 서면 누구나 곤란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여태껏 알고 있던 인어의 모습은 이게 아니기 때문이다.전 세계 어린이의 꿈과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인어공주는 분명 긴 머리에 아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 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느껴져 따스함이 가슴에 잔잔하게 퍼지는 느낌. 이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이 아닐 런지.봄빛 가득한 들판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양산을 쓰고 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눈부시게 빛나는 새털구름은 대기의 움직임으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봄의 기운을 한껏 연출하고 있다.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여름 직전의 연둣빛 풀잎들을 살살 흔들고, 여인의 드레스자락도 봄바람에 가볍게 살랑인다. 인상주의 미술 특유의 대충 그린 듯한 붓터치 때문에 여인의 얼굴을 정확히
살구빛이 감도는 연한 핑크색 드레스가 한껏 부풀려져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신비로운 빛이 쏟아져 들어와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을 더욱 빛나고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누가 봐도 그녀가 주인공이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우아하고 세련된 상류층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아! 지금 막 그녀의 작고 앙증맞은 발에 신겨졌던 구두가 벗겨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인의 시선은 날아가는 자신의 구두가 아니라 그네 앞쪽 덤불 사이에 숨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젊고 잘생긴 남자에게 꽂혀있다. 그는 큐피드
근처 상점에 불이 꺼지고 거리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걸 보면 자정이 지난 지 이미 오래다. 인테리어도 별 볼 일 없고, 메뉴도 신통치 않아 보이는 이 카페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앉은 이유는 뻔하다. 언제든 부담 없이 들어와 시간을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전기의 사용이 일상화된 후로 인류의 밤은 낮처럼 환하게 밝아졌고, 더불어 깨어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나 밤이 길어진다는 게 누구에게나 좋은 일은 아니다. 도시의 밤은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다.카페 안의 손님 모두 겉모습은 화려하게 차려입었
집시 여인이 잠들어 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 표정이 평온하다. 보름달은 환한 얼굴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태고의 순수함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여기서 시선이 멈춘 것 같다.아무렇게나 풀어진 긴 머리와 검고 건강한 피부는 그녀가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임을 느끼게 한다. 만돌린을 닮은 악기는 이 외로운 여행에 위안이자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듯 나란히 누웠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몸을 작은 담요에 뉘면서 언제나 그랬듯 밤하늘을 천장 삼아 눈을 감았다.저녁을 먹기는 했을까. 머리맡에 놓인 질그릇 물병에 담긴 물이 오늘
이 그림은 큐비즘 미술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스페인)가 그의 네 번째 뮤즈 '마리 테레즈'를 그린 이다.막 피어나는 꽃처럼 싱그러운 청순미를 풍기는 17살의 마리 테레즈와 우연히 마주친 피카소는 그녀를 보자마자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놓칠까봐 초조할 정도였다. 금발의 순진한 여고생에게 이미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키 작은 중년의 유부남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당신을 그리고 싶소. 당신은 나와 함께 위대한 일을
때로는 뒷모습이 더 많은 의미를 전하기도 하는 법. 바위산 꼭대기에 우뚝 선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산 정상에서 불고 있는 세찬 바람에 그의 짧은 금발이 흩날린다. 발 아래로 보이는 안개는 거센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듯 호기롭게 시각적 쾌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망망대해 같은 안개바다를 바라보며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지금 상당히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듯하다. 동양의 선비처럼 자연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동양에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을 바탕으로 서양
"에밀리를 불러줘"클림트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남자의 두 손이 소중하게 감싸고 있는 여인이 에밀리일까. 황금빛 천에 둘러싸인 두 사람을 따로 구별하는 게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영혼마저 하나였던 것처럼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눈부시게 화려한 문양의 황금빛 포장 밖으로 내민 손과 발, 그리고 얼굴만이 육감적인 현실을 각성하게 할 뿐 분위기는 사뭇 몽환적이다.시공간을 초월한 이곳엔 오직 두 사람뿐. 화려한 꽃밭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된 둘만의 달콤한 '유배지'일까. 세간
무시무시한 살인의 현장. 주저함이나 두려움이란 단어를 이 그림에서 찾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아직 남자는 살아있다. 하지만 맹수에게 잡힌 사냥감의 운명이 그렇듯 여인은 사내를 살려 줄 의지가 1도 없어 보인다.남자의 이름은 홀로페르네스. 아시리아의 용맹한 장군으로 눈엣가시 같이 여기던 유대인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다. 그의 조국에선 영웅일 수 있겠으나 유대인에게는 적국의 원수일 뿐. 적장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 결연하게 목을 베고 있는 여인의 이름은 유디트. 두 여인의 팔뚝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렸다.유디트는 성경의 외경(Apocry
흰 드레스를 입은 앙증맞은 금발의 공주에게 시선이 쏠린다. 도도한 표정으로 감상자를 단박에 사로잡은 주인공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폰 합스브르크 공주.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와 그의 조카이자 두 번째 부인 마리아나 왕비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이 어린 공주는 훗날 외삼촌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왕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된다.'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을 하라.'평화라는 이름의 혼인동맹을 통해 합스브르크 가문의 핏줄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결혼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나 보다. 막 돌아보는 여인의 표정이 상기되었다.검은 드레스와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 밝고 찬란한 가을의 색채. 절정에 오른 가을이 낙엽으로 분신해 노랗게 또는 붉게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감정을 대신하고 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캐슬린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티소에게 그런 의미였으리라.이 그림 을 그린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파리코뮌에 가담했던 후유증을 피해 1871년 영국
방금 꾀꼬리가 울었는가. 순간 고삐를 당겼나보다. 말의 앞다리는 주춤, 뒷다리는 어정쩡하다. 지척에서 들려온 새소리에 선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를 쳐다본다. 연둣빛 작은 이파리, 풋풋한 애송이 버드나무 가지에서 단박에 찾아낸 노란 꾀꼬리.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더 있다.봄날의 한적함을 깨뜨린 꾀꼬리 한 쌍의 정감어린 울음소리. 말 위에서 숨 죽이며 선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실비를 맞아가며 그는 한눈을 팔고 있다.이 그림은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풍속화의 거장 단원(檀園)
돌봄을 못 받아 머리털 다 빠진 유기견처럼 비루한 모습의 탕자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의 눈에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참회의 눈물이다.'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포부도 당당하게 고향을 떠난 지 몇 해. 패기 넘치던 젊은 청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버지에게 무너지듯 기댄 몸뚱어리는 아들이 아닌 종의 모습이다. 유산을 모두 탕진한 후 사람으로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의 밑바닥 맛을 본 그는 뼛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시나요?"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 1932~현재ㆍ콜롬비아)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그의 얼굴에 답은 이미 써져 있다."노(No)."이 그림의 제목은 . 그녀가 발레리나이기는 한 걸까? 풍만한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작은 발, 분홍 토슈즈. 그녀는 용케도 발끝으로 서 있다. '좋아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표정엔 아무 의욕도 없어 보이지만, 몸은 익숙한 듯 시크하게 고난도 발레 동작을 해내고 있다. 그 어렵다는
두 사람은 지금 런던에 와있다. 발밑에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서만 사용하는 문양이 그 증거다.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요청으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파견한 대사다. 미션은 영국 왕 헨리 8세와 왕비 캐서린의 이혼을 막는 것. 당시 교황은 '신 앞에서 맹세한 결혼의 서약을 깰 수 없다'는 핑계로 이혼을 반대했다.캐서린 왕비는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의 딸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이모였다. 교황은 카를 5세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형 아서가 죽은 후 6살 연상 형수와 결혼한 헨
지루한 장맛비가 그쳤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계곡과의 연장선이 끊어진 산봉우리는 마치 이승이 아닌 냥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웅장한 바위와 소나무가 절경을 이룬 가운데 신선과 이웃으로 지내는가 싶은 민가 한 채가 보인다.태어나 철들고 느긋한 노년을 맞이하기까지 종로를 터전으로 살아온 '서울토박이' 겸재(謙齋) 정선(鄭歚ㆍ1676~1759)의 자부심이 되어 준 인왕산. 저기 아래쪽 기와집엔 그의 오랜 지기가 살고 있다. 사천 이병연의 집이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누구보다 겸재의 그림을 좋아하던 친구, 뼛속까지 내 편인
화면 후경에는 방금 죽은 시체가 축 늘어진 채 들려 나가고 있다. 조금 앞쪽엔 독약이 몸에 퍼져 고통에 몸을 비트는 인물이 보인다. 이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왕, 클레오파트라. 연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실험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표정 없는 얼굴은 현세를 초월한 조각상인 듯 신성마저 느껴진다.독약의 종류와 효능에 관심이 많았던 여왕은 적잖은 사형수들을 독약의 효능을 실험하는 데 동원했다. 냉정한 시선으로 죽어가는 실험대상을 바라보던 여왕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무표정한 얼굴에서 언뜻 자신의 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