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꾀꼬리는 봄을 즐길 줄 안다
[그림으로 세상읽기] 꾀꼬리는 봄을 즐길 줄 안다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승인 2018.05.06 11:57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원 김홍도 〈마상청앵도〉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의 선비가 버드나무 위 노란 꾀꼬리를 올려다 보고 있다. ⓒ 간송미술관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의 선비가 버드나무 위 노란 꾀꼬리를 올려다 보고 있다. ⓒ 간송미술관

방금 꾀꼬리가 울었는가. 순간 고삐를 당겼나보다. 말의 앞다리는 주춤, 뒷다리는 어정쩡하다. 지척에서 들려온 새소리에 선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를 쳐다본다. 연둣빛 작은 이파리, 풋풋한 애송이 버드나무 가지에서 단박에 찾아낸 노란 꾀꼬리.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더 있다.

봄날의 한적함을 깨뜨린 꾀꼬리 한 쌍의 정감어린 울음소리. 말 위에서 숨 죽이며 선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실비를 맞아가며 그는 한눈을 팔고 있다.

이 그림은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풍속화의 거장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가 그린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단원 특유의 활달한 풍속화와는 다르게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섬세한 모습을 담아내며 봄의 정취와 함께 서정미를 한껏 풍기는 산수 인물도다.

서민의 일상과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을 해학적으로 풍속화에 녹여내며 서민의 감성을 대변하던 천재화가 김홍도. 중인 출신으로 그림솜씨가 탁월해 일찌감치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는 궁중의 도화서 화원이 되자마자 정조(正祖)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하던가. 왕의 파격적인 인사 특혜로 벼슬길에 오른 김홍도는 양반계층의 기득권 맛을 본 뒤부터 화풍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민의 모습을 다룬 풍속화보다는 양반들이 여기로 그리던 문인화풍의 산수화가 점차 그의 그림의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뼛속까지 양반이고 싶었던 그의 심사가 은근히 엿보인다.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의 노란 꾀꼬리. ⓒ 간송미술관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의 노란 꾀꼬리. ⓒ 간송미술관

그러나 왕의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됐다. 하찮은 환쟁이 나부랭이에게 가당치도 않은 높은 벼슬이라니, 이는 태생부터 양반이던 이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신분에 맞지 않은 부당한 인사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결국 연풍 현감을 끝으로 김홍도는 다시 중인의 신분으로 내려오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아첨을 떨어대던 이방이 오늘은 마치 끈 떨어진 갓 보듯 싸늘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

세상사 아무런 상관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꾀꼬리 한 쌍의 모습이 노년의 화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멈춰서 새소리 나는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저 선비는 김홍도 자신의 자화상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동안 돈, 명예, 권력에 집착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순간일 터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그것은 저 꾀꼬리처럼 자유롭게 살며 자족할 줄 아는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림의 뒷배경은 안개 때문인지 시원하게 여백으로 처리했다. 필단의연(筆斷意連), 붓선은 끊겼으되 뜻은 이어진다는 의미다. 붓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눈에 선한 풍경, 이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화가의 노련한 배려로 남겨진 감상자 몫의 유산이다.

땅콩회항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대기업의 오너 일가가 저지른 이른 바 '갑질'에 온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머슴 부리듯 직원을 대하는 특권의식, 직원까지 동원해 명품을 밀수하는 그들의 소유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있는 것들이 더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아 씁쓸한 자조가 새어나오는 요즘, 300년전 화가의 그림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지향점을 다시 설정해 봄이 어떤가.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선도 2018-05-10 07:09:40
단원의 작품은 인류의 유산입니다

메카 2018-05-07 07:36:12
꾀꼬리 소리 들어본지가 언제인지

최영님 2018-05-06 20:37:09
깊은뜻이 있는 그림이군요.

중심 2018-05-06 13:09:11
돈 명예 권력.... 오늘날 누구누구를 보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