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작품 '그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작품 '그네' (1767·캔버스에 유채·81×64㎝) ⓒ 런던 월리스컬렉션
▲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작품 '그네' (1767·캔버스에 유채·81×64㎝) ⓒ 런던 월리스컬렉션

살구빛이 감도는 연한 핑크색 드레스가 한껏 부풀려져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신비로운 빛이 쏟아져 들어와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을 더욱 빛나고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누가 봐도 그녀가 주인공이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우아하고 세련된 상류층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 지금 막 그녀의 작고 앙증맞은 발에 신겨졌던 구두가 벗겨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인의 시선은 날아가는 자신의 구두가 아니라 그네 앞쪽 덤불 사이에 숨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젊고 잘생긴 남자에게 꽂혀있다. 그는 큐피드 조각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귀여운 그녀를 눈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올려다보고 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맞은 모양이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 ⓒ 런던 월리스컬렉션
▲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여인의 구두가 벗겨져 날아가는 모습). ⓒ 런던 월리스컬렉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네를 타는 여인의 모습은 에로틱한 연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춘향전에서 이팔청춘 이몽룡이 첫눈에 반해버린 춘향이의 모습도 단오 날 그네를 타던 모습이고,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가 그린 그림에도 수줍은 시골처녀의 풋풋한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에 어김없이 그네가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여인의 몸짓이 수상쩍다. 그네 앞쪽에 남자가 있음을 알면서도 숙녀다운 조신한 모습은커녕 오히려 다리를 들어 올리며 치마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유혹적인 발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저 구두도 혹시 일부러 날려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처음 본 남자에게 정숙한 여인이 취할 행동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두 남녀의 관계는 지금 막 시작된 것이 아닌,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는 심증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 18세기말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 부분(왼쪽), 19세기말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그네'(오른쪽)​
▲ 18세기말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 부분(왼쪽), 19세기말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그네'(오른쪽)​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이 피어나는 싱그러운 계절에 젊은 선남선녀가 사랑에 빠졌다 한들 무엇이 이상할까마는, 화면 왼쪽에 보이는 큐피드 조각상은 모두에게 침묵을 명령하듯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다. 쉿! 이것은 저 둘의 사랑이 남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은밀한 연애라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게도 이 그림에는 두 사람 외에 등장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커다란 떡갈나무에 매어진 그네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화면에서 대각선을 가로지르며 젊은 남녀를 의도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지만, 그녀의 등 뒤 어두운 곳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백발의 노인을 발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큐피드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모습(왼쪽), 젊은 남자의 모습(가운데), 늙은 남편의 모습(오른쪽)). ⓒ 런던 월리스컬렉션
▲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큐피드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모습(왼쪽), 이 그림을 주문한 귀족의 실제 모습을 닮게 그린 젊은 남자의 모습(가운데), 늙은 남편의 모습(오른쪽)). ⓒ 런던 월리스컬렉션

얼핏 보면 젊고 화려한 두 남녀를 시중드는 하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노인은 돈 많고 신분이 높은 사람만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입고 있다. 사실 그는 저 생기발랄하고 끼 많은 여인의 남편이다. 안타깝게도 늙은 남편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젊은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중이다. 기력이 쇠했는지 서있지도 못하고 벤치에 앉아서 말이다.

이 그림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려한 귀족들의 문화와 쾌락지향적인 그들의 성적 유희를 경쾌한 풍속화로 그려내며 당대의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마지막 대가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프랑스)가 1767년에 그린 <그네>다. 이 작품은 프라고나르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안겨다 주었다. 덕분에 그림 주문이 폭주하며 그는 당대의 인기 작가로 급부상했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자화상'
▲ ​프라고나르의 '자화상'

감성적이며 충동적인 기질을 타고난 프라고나르는 아카데믹한 종교화나 역사화를 그리는 것보다 '장르 갈랑트(genre galante)'라는 일명 연애풍속화를 주로 그렸다.

먹고 사는데 걱정 없었던 당시의 귀족들은 오직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것과 성적 욕망을 채울 사랑의 유희에 정신이 팔려서 시민정신이 싹트고 있는 시대적 기운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다. 그에 따라 프라그나르도 루이15세, 루이16세 때의 귀족들과 친분을 맺으며 귀족 계층의 취향에 맞게 가볍고 유쾌하며 관능적인 주제를 다룬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림을 즐겨 그리던 프라고나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프랑스혁명 이후 그의 그림이 귀족과 시민 모두에게 배척받는 위기를 맞는다. 왕조차도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가는 판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라고나르는 전성기에 그를 알았던 사람 중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쓸쓸하고 가난한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난다.

그의 사후 연애풍속화를 비롯한 로코코 미술은 지나친 장식성과 감정과다 및 도덕적 해이로 인한 경박성 등을 이유로 미술사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미술비평가 헤럴드 로젠버그에 의해 그의 그림이 재조명 되면서 세상에 그 존재감을 다시 드러내게 된다.

'그가 그린 세상 속에는 삶의 기쁨, 쾌활함, 솔직함, 행복, 생기가 넘쳐흐른다. 그는 황홀함을 담아 확신에 찬 시선으로 묘사했다.'

프라고나르에 대한 로젠버그의 이러한 긍정적인 재평가는 잠잠히 잊혀져가던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대가를 단박에 20세기에 화려하게 부활시켰고, 그 동안 평가절하 됐던 로코코 미술의 미술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칸트(I㎜anuel Kant 1724~1804·독일)가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의 특징을 해명할 때 사용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란 개념 덕분에 이미 예술이 도덕적 의무에서 해방된 바 있기에, 미적 허용의 차원에서 로코코 미술에 대해 화가의 주관성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세 명의 등장인물과 큐피드)
▲프라고나르의 '그네' 부분(세 명의 등장인물과 큐피드). ⓒ 런던 월리스컬렉션

오늘날 이 그림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사한 핑크색 드레스자락을 날리며 그네를 타고 있는 이 여인의 발칙하고 인상적인 모습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근심과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한참 동안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그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코믹한 장면 앞에서 감상자들은 그림 속 인물들 각각의 심리를 헤아려보며 자신도 모르게 재미있는 결말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저 맹랑한 여인이 입고 있는 드레스가 핑크색인 까닭에 그 특유의 가볍고 달콤한 느낌이 감상자를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돈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 연애가 생각대로 잘 안 풀리는 사람, 결혼생활과 육아에 지친 사람, 인간관계에서 실망한 사람, 건강 때문에 고민되는 사람,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잠시 동안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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