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캔버스에 유채·73.5×92㎝)ⓒ반 고흐 미술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캔버스에 유채·73.5×92㎝) ⓒ 반 고흐 미술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그림에 보이는 화사한 꽃잎들은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델란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던 해 그가 보았던 마지막 봄이었다.

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몬드 나뭇가지가 마음껏 굽어져 펼쳐있고, 그 위에 순수를 옷 입듯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했다. 어쩌면 저리도 화사한 행복을 몇 그램도 안 되는 물감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전에 말한 대로 아기의 이름을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 지었어. 우리는 아기가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화가의 삶을 시작한 후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던 평생의 후원자이자 영혼의 단짝인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게다가 아기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다니, 고흐는 암울한 현실을 망각할 정도로 너무나 기뻤다.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귀까지 자르며 광기에 사로잡힌 이상행동을 보이자 이미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혀버린 고흐는 결국 마을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던 고흐는 생 레미에 있는 정신요양원에 스스로 찾아가 치료를 위해 환자로 입원 중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던 차에 파리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그 소식은 좌절과 우울의 늪에 빠져 세상과 고립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던 고흐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당장 파리로 달려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고 천사 같이 하얗고 보드라운 어린 빈센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병원을 나갈 수 없었던 고흐는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그려 보내기로 맘먹는다.

무기력하던 그의 심장이 설렘과 기쁨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조카의 머리맡에 봄기운이 물씬 나는 싱그러운 이 그림이 걸리는 것을 상상하며 고흐는 그림을 그리는 내내 행복했을 것이다.

아몬드 꽃은 가장 이른 봄에 피는 꽃으로 생명력 넘치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기에 충분했다.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데다 건강과 행복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자신의 이름을 조카가 물려받는 게 왠지 미안스럽고 걱정된 고흐는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여 그림을 그렸다.

▲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부분

고흐가 파리를 떠나 아를로 내려온 후 꽃나무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꽃을 관찰하며 그린 것도, 이처럼 밝은 색채를 사용한 것도 처음이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며 고흐 자신도 내심 뿌듯해했다.

부활의 상징으로도 알려진 아몬드 나무 꽃은 고흐에게도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고흐는 무엇에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삶의 의욕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아직은 쌀쌀하고 추운 이른 봄이라 그랬는지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고흐는 한동안 몸져눕는다. 그 바람에 몇 주간이나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이후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얼마나 깊은 어둠에 빠져들었는지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고흐는 스스로를 향해서 방아쇠를 당긴다.

▲ 반 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 자화상 (1889·캔버스에 유채·65×94㎝)ⓒ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 반 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 자화상 (1889·캔버스에 유채·65×94㎝) ⓒ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1890년, 그해는 지금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된 삼촌의 죽음과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할 조카의 탄생이 교차하며 미술사에 영원히 기억될 운영적인 해가 됐다.

그러면 파란 눈을 가진 아기 빈센트는 삼촌의 바람대로 잘 자랐을까? 그는 삼촌이 그려준 아몬드 꽃 그림을 평생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아버지 테오마저 삼촌이 죽고 나서 6개월 뒤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형이 간 곳으로 따라가지만,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어엿한 엔지니어로 성장해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 조카인 아기 빈센트와 그의 어머니 요한나(테오의 아내)(왼쪽), 나이든 조카 빈센트의 모습
▲ 조카인 아기 빈센트와 그의 어머니 요한나(테오의 아내)(왼쪽), 나이든 조카 빈센트의 모습

조카는 삼촌의 위대한 작품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가 꿋꿋이 지켜온 삼촌의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그는 단 한 점의 그림이나 드로잉도 팔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훗날 '반 고흐 재단'을 세워 삼촌의 모든 유작들을 기증했다. 자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귀중한 아몬드 꽃 그림도 함께.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동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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