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노숙자도 목욕탕의 '귀중한 손님'
[그림으로 세상읽기] 노숙자도 목욕탕의 '귀중한 손님'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승인 2018.01.26 2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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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8~1669 캔버스에 유채 264.2×205.1cm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
▲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8~1669 캔버스에 유채 264.2×205.1cm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

돌봄을 못 받아 머리털 다 빠진 유기견처럼 비루한 모습의 탕자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의 눈에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참회의 눈물이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포부도 당당하게 고향을 떠난 지 몇 해. 패기 넘치던 젊은 청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버지에게 무너지듯 기댄 몸뚱어리는 아들이 아닌 종의 모습이다. 유산을 모두 탕진한 후 사람으로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의 밑바닥 맛을 본 그는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후회가 밀려나왔으리라.

고향을 떠올려봤지만 생각만 할 뿐. 초라한 거지꼴로 아버지와 형 앞에 어찌 나타겠는가. 양심상, 자존심상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고향으로 향했다. 아버지 앞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아들의 지위와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종이 되기로 결심이 선 시점이다.

네델란드 예술의 황금기를 이끈 빛의 마술사,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1606~1669·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가 그린 이 그림은 성경 누가복음 15장을 내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됐다. 렘브란트는 왜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돌아온 탕자>를 그린 것일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이 지긋지긋한 말년의 가난과 불행이 죽음으로 마무리 될 즈음 그는 돌아갈 아버지, 바로 신(神) 앞에 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터. 돌아온 탕자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이다.

젊은 나이에 화가로 성공하면서 네델란드 북부의 프리슬란트 시장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하게 된 렘브란트는 사회적 신분상승과 부(富)를 동시에 거머쥐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상류층 언저리로 올라간 것이 그의 허영심을 자극한 것일까.

그의 자신감은 그의 수입을 압도하며 과도한 지출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탕자의 삶이 곧 그의 삶이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태어났다.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연이어 죽었다. 세 번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죽고, 같은 해 그의 어머니가 사망한다. 아내의 산후조리를 돕던 처형이 죽고, 네 번째 자식인 아들 티투스가 태어난 후 아내마저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 둘 시작된 불행이 렘브란트에게 경고를 날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바닥을 치기 전까지 허우적댔다.

회개할 생각이 없었던 그는 아내의 유산에 집착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들의 유모인 헤르트헤와 동거를 하는 와중에 가정부로 들어온 헨드리케와도 내연의 관계가 되자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법원이 선고한 위자료를 아끼기 위해 헤르트헤를 제정신이 아니라며 정신병자 수감원에 넣어 버렸다.

사실혼 관계인 헨드리케와도 그녀가 죽을 때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다. 아내 사스키아가 남긴 유산은 그의 재혼과 함께 그의 손에서 사라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렘브란트의 지저분한 사생활은 화가로서의 삶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당시 상류사회는 도덕성이나 종교적인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는 파산했고 빈민촌으로 쫓겨났다. 궁핍함은 극에 달해 급기야 아내의 묘지터까지 팔아서 연명해야 했다.

불행은 끊임없이 닥쳐왔다. 흑사병으로 헨드리케가 죽고, 몇 년 후 외동아들 티투스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뜬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아들의 죽음을 맘 놓고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아내가 티투스에게 남긴 유산을 빚쟁이들에게 빼앗길까봐 급히 조처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빛의 화가'로 불리던 바로크 거장의 말년은 그렇게 철저한 외톨이가 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타지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풍문으로 들으며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눈이 다 짓무른 늙은 아비는 버선발로 맞으며, 그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면서도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아버지의 두 손이다. 왼손은 힘줄이 보일정도로 어깨와 등을 넓게 감싸며 벅찬 기쁨과 용서를, 오른손은 부드럽고 온화하게 안도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화가가 곧 신 앞에 설 자신을 생각하며 영원한 용서를 탄원하는 심정으로 이 그림을 그렸으리라.

이 그림에는 등장인물이 네 명 더 있다. 셋은 분명치 않지만 화면 맨 오른쪽에 기둥처럼 무표정하게 서있는 남자는 분명 노인의 큰 아들이다. 이 장면을 목도하고도 아무런 기쁨이 없어 보인다. 관례대로라면 아버지의 재산은 전부 장남인 자신의 차지가 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꼬드겨 챙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이 반갑지만은 않았을 터. 그는 거리를 둔 채 심판자의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우리는 돌아온 탕자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일까. 많은 사람들이 고의든 아니든 실수를 저지른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가증한 사람도 분명 있지만, 우리는 타인의 진정한 반성에 귀 기울이고, 너그러운 관용의 미덕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빛의 화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모든 내공이 집약된 늙은 아비의 두 손에서 우리는 모범을 찾아야 한다.

교회는 죄인을 심판하고 손가락질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신의 사랑으로 치유와 위로를 받고 영혼구원에 힘쓰는 곳이다. 때가 있는 사람이 목욕탕에 가듯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통렬한 반성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의 지난 잘못에 대해 지적질만 해대는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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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만 2018-02-28 11:16:47
램브란트... 빛의 화가답게 그의 작품을 보면 눈이 호강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