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가 2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지 3년만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회사 관계자 등 11명에 대해서도 금고형이나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금고형은 확정되면 징역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징역형과 달리 강제노역은 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이들을 법정구속하진 않았다.
홍 전 대표, 안 전 대표 등은 독성 화학물질을 이용한 가습기살균제 제품 '가습기메이트'를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제조·판매해 98명에게 폐 질환이나 천식 등을 앓게 하고 그 가운데 12명을 사망케 한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다.
앞서 1심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가 폐 질환 등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고려하면 CMIT·MIT가 이 사건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살균제 사용과 폐 질환 등의 구체적 인과관계의 신빙성도 인정된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 관계자는 "SK와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는 출시 전 동물들을 상대로 한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연령대의 불특정 다수 국민에게 유통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만성 흡입 독성 시험이 행해진 것"이라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폐 질환이나 천식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항소심 판결을 반쪽짜리 승리라고 평가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민수연씨는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구형한 형도 너무 낮았지만 그것마저 선고되지 않아 눈물을 흘렸다"며 "그래도 2심에서 그나마 유죄가 나왔단 점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들이 폐 손상 등의 피해를 본 사건으로 2011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262명이다.
애경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피해 회복과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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