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혈혈단신으로 대한민국에 온 여자 제자가 결혼식을 했는데, 그날 여자 제자의 부모석에 저희 부부가 앉아서 울었습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예쁘게 신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제자를 보고서는, 자꾸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함부로 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제가 숨겼어도, 북향민 제자가 이걸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는 너무 좋았는데, 간사인 제가 울어서 자기도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신부가 울었다가는 애써 한 신부 화장이 엉망이 되기에, 의지가 굳건한 북향민 제자가 그걸 참았다고 했습니다. 너무 기특하고 고마워서 제자에게 울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마치고 딸아이에게 항의를 받았습니다. 북향민 제자의 부모석에 저희 부부가 앉는 걸 왜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까지 네게 말해야 하느냐고 따지려다가, 부모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 것 같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딸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북향민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제 딸이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한참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에 북향민만큼이나 딸의 공부를 제가 봐주지 못했습니다. 재수해서 딸이 대학에 갔지만, 그게 늘 마음 한구석에 걸렸기에 딸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빠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 것처럼 살았던 딸아이가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쪽을 기웃거렸다가, 사회복지학을 권유하는 제 말에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기 동안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나더니, '이게 그렇게 재미있고, 자기에게 딱 맞는 공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통한 노인복지와 노인건강체조 쪽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면 노년으로 접어들 저는 '딸이 나를 위한 부업이라도 하려나'라는 생각에 내심 기뻤습니다.

공부를 계속하다가 딸이 말을 바꿨습니다. 스포츠 교류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북향민 복지에 관한 걸 연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남북 간에 스포츠 교류가 계속되는 게 필요하기에, 이걸 연구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게는 북향민이 의무조항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향민 제자들에게 엉뚱한 오해를 받고, 그런 오해가 쌓여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전개돼도 그냥 버텼습니다. 그러나 딸에게는 북향민이 이 아이가 본 새로운 기대이자 밝은 전망이었습니다. 제게는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 가사처럼 그냥 소원이었는데, 딸에게는 그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한반도가 준 비전이었습니다. 남북관계나 북향민에 관한 생각도 이렇듯 저와 딸에게 다른 환경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딸이 공부하고 싶은 스포츠 사회학에 관한 연구자료가 우리나라에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딸은 그걸 조금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입국 거부 등의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문제가 잘 해결돼 유학 간 나라에서 딸이 바랐던 것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얼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딸이 공부하러 간 나라에도 북향민과 연관된 단체가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에서 어떤 조건을 내걸고 장학생을 공모하는 일이 있어서 그것에 관해 물어보려고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딸아이와 인터넷으로 통화하고 난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를 이어 한반도의 통일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부녀가 탄생하게 생겼습니다. 국민을 볼모로 삼아 그들만 특권을 누리는 북한의 기괴한 지도자들처럼 대를 이어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기 위해 대를 이어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녀가 만들어질 판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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