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무시하고 형법 아닌 은행법 적용
주철현의원 "과태료아닌 고발해 책임 물어야"

▲ 주철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의원실
▲ 주철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의원실

농협은행이 업무상 횡령을 저지른 직원들에게 '형법'이 아닌 '은행법'을 적용, 자체 징계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도 과태료 처분으로 사안을 종료했다.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여수갑)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2017년부터 1년간 자체 감사를 통해 8개 지점의 직원 9명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농협은행은 직원들이 자신의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거나 주식투자, 외환거래 차익을 위해 실제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단말기를 이용해 출금(무자원 선입금 거래)한 뒤 사용하고 이를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전산을 조작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은 은행법의 '불건전 영업행위의 금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주의촉구, 징계해직 등 자체 징계했다. 고발이나 수사의뢰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농협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농협은행의 판단을 수용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건을 마련했다. 금융위원회는 과태료 부과 조치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문제는 이같은 행위가 형법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농협은행이 대법원 판례까지 무시하며 엉뚱하게 '은행법'을 적용해 솜방망이 문책에 그쳤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가 주철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농협은행이 해당 직원들에게 적용한 은행법은 은행 이용자에게 부당하게 편익을 제공하거나 이용자의 부당한 거래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해 은행의 경영건정선을 높이고 신뢰도를 개선하기 위한 규정이다. 금고를 지키는 은행 직원들을 규율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

주철현 의원의 지적에 농협은행은 "직원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 후 같은 날 반환했다"며 "사용 당시부터 은행의 소유권을 영구적으로 제거할 의사가 없이 사용한 것으로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어 업무상 횡령죄가 아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상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사후에 반환하거나 변상·보전하려는 의사가 있다고 해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결(2010도9871)해 농협은행 직원들의 행위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지어 농협 직원들의 행위는 업무상 횡령뿐만 아니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사전자 기록 위·변작죄'에도 해당한다.

농협은행 직원들이 형법이 규정한 2가지 범죄를 저질렀만 엉뚱한 법규를 적용해 형사처벌을 면하게 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구나 최고 감독기구인 금감원·귱융위조차 농협은행의 말만 믿고 형사처벌 대상인지 여부는 제대로 검토조차 않았다.

주철현 의원은 "농협은행과 금융위는 담배에 불을 붙여 화재를 일으킨 사람을 방화죄로 처벌하지 않고, 꽁초를 무단투기했다고 과태료만 부과한 격"이라며 "농협은행은 이제라도 이들 직원들에 대한 고발을 통해 책임을 묻고, 금융위원회 역시 황당한 의결 절차가 진행된 과정을 점검해 관련자를 문책하고 재발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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