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감 송병준 선정비(왼쪽 첫번째), 팔굉일우비(왼쪽 두번째), 백작 송종헌 영세기념비(왼쪽 세번째), 팔굉일우비 탁본. ⓒ 민족문제연구소
▲ 현감 송병준 선정비(왼쪽 첫번째), 팔굉일우비(왼쪽 두번째), 백작 송종헌 영세기념비(왼쪽 세번째), 팔굉일우비 탁본.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경기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오는 11일부터 22일까지 경기도 신청사 본관 로비에서 '비문에 남긴 찬사-그 이면의 흑역사'란 제목으로 일제강점기 기념비 탁본 전시회를 연다.

전시는 경기도 2023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항일 추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경기문화재단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한다.

경기도는 2019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사업을 진행한 뒤 2021년 5월 도의회에서 경기도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지속적으로 후속사업을 전개해왔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도의 선행 연구·조사 성과를 토대로 이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도 각지에 산재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기념비를 탁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각종 석비류 47기 100여점에 이르는 탁본을 1차 완료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명문을 정확하게 판독·해석해 이를 정리했다. 미화 일변도 비문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이 결과물들을 선별해 소개하는 자리다. 전시는 △1부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물 관련 금석문 탁본 △2부 일제 식민통치 관련 금석문 탁본으로 나눠 해설을 덧붙였다.

현장 사정으로 미처 전시하지 못한 나머지 탁본들은 △3부 면장·조합장 등 재지유력자 관련 금석문 탁본으로 편제해 도록에 실었다.

주최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가 역사인식의 정립과 대중화에 기여하고 역사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1부. 친일인명사전등재 인물 관련 금석문 탁본

송덕비(頌德碑), 선정비(善政碑), 공덕비(功德碑), 치적비(治績碑), 청정비(淸政碑), 불망비(不忘碑), 기념비(紀念碑) 등의 이름을 지닌 비석은 어떤 인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본래는 선정을 베푼 전임 지방관이나 구휼·교육·복지 사업에 공헌한 유력자의 업적을 잊지 않기 위해 향촌사회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조선 말기부터 이 같은 취지가 퇴색하고 모든 관리들이 이임하면 선정비를 세워주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되고 말았다.

심지어 탐관오리들이 재임 시기에 강압적으로 선정비를 세우게 하거나 생사당(生祠堂)까지 건립하는 폐해까지 일어났다.

1부는 친일파들을 기념하는 비문과 일제강점기의 행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교·평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찬양 일변도의 명문(銘文)에만 매몰돼 역사적 진실이 감춰진다면 이 또한 하나의 역사왜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2부. 일제 식민통치 관련 금석문 탁본

일제는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다양한 기념조형물을 건립했다. 이것들은 △일제 식민지배의 업적을 선전하는 각종 시정기념비와 산업시설 준공비 △일제의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한 보국탑, 황국신민서사탑, 내선일체탑, 교육칙어탑, 팔굉일우탑 등 선전비 △침략전쟁과 관련된 승전기념비 또는 전몰자위령비 △식민통치에 관여한 일본인 기념물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일제 식민통치와 직접 연관이 있는 이 기념조형물들은 해방 당시 대부분 파괴됐으며 일부 잔존하고 있는 것들도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캠페인 때 소멸됐다.

현재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극소수여서 역사교육과 현장학습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2부는 도 내에 드물게 남아있는 식민통치 기념물과 관련된 탁본으로 구성해 화려한 선전 뒤에 감추어진 가혹한 통치의 일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 3부. 면장·조합장 등 재지유력자 관련 금석문 탁본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제시기 비석류의 다수는 읍장, 면장을 비롯한 하급 관공리와 조합장, 기관장 등 관변단체 대표들의 공적 기념비다.

하지만 이들을 미화하는 비문의 내용들이 과연 실제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고등관 이상에 적용되는 친일인명사전의 당연직 수록대상자에선 제외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 유력자들이 부역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제 식민통치를 체험한 일반 민중에게는 이들이 징병·징용·공출·배급 등 생활과 밀착된 부문에서 일상적으로 갈등을 겪은 최일선의 식민통치 실행자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입법의원 특별위원회에서 마련한 '부일협력자(附日協力者), 민족반역자(民族叛逆者), 전범(戰犯), 간상배(奸商輩)에 대한 법률 초안'에서 행정부문의 모든 관공리를 부역자로 규정하고 있는 데서도 이 같은 인식 일단이 드러난다.

일제의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다수의 읍면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도 구조적으로 이들이 식민통치와 전쟁동원의 첨병이었음을 입증해준다.

3부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식민지배의 하부구조를 이룬 하급 관공리의 역할을 조명함으로써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