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권 논설위원
▲ 한상권 논설위원

지난 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전라북도의 한 초등학교의 학부모가 학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속적인 담임 교체 요구는 교육 활동 침해 행위"라며 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담임교사 B는 수업 도중에 페트병으로 소리를 내며 반복적으로 수업을 방해하던 학생에게 교실 바닥 청소를 시켰고, 학생의 부모는 분노하고 교육청과 B선생님을 상대로 다툼을 벌였던 사건이다.

MZ 세대에겐 다소 낯선 얘기겠지만, X세대나 이 전 세대들에게 선생님이란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할 존재처럼 존경 받아 마땅한 스승으로 여겨졌다.

때로는 수업 도중에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채벌도 비켜갈 수 없었다. 규율 위반이나 학업 태도가 문제 있다는 판단이 서면 교실 청소나, 화장실 청소, 복도 청소, 심지어 운동장의 잡초제거 역시 선생님의 훈육 방식 중 하나였다.

일부 학부모는 아이를 특별히 봐줄 것을 요청하며 국어사전에서나 나올만한 '촌지'를 앞세워 교내의 기득권을 확보하고 또 진학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으려 줄을 서기도 했다. 당시에는 불합리함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환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세대였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제 그런 기성세대와 X세대의 기억은 머나먼 옛이야기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다양한 방식의 교권 침해에 대해 사회적으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은 다행이다.

학부모의 내 자식 하나 잘 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어이든 할 수 있고, 누구라도 밟고 올라가도 된다는 식의 상식 밖 가정교육과 과도한 보호로 인해 아이는 학교에서 갑의 위치에 서게 된 점은 오늘 내일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또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 경쟁자를 포용할 만한 마음의 양식을 키워낼 만한 틈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1등만을 바라보는 사회 현상도 한몫했다.

그런 날카로움만 가지고 있는 아이는 당당하게 선생님의 훈육을 '아동학대'라는 명목을 주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놓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부 학부모의 그릇된 자식 사랑 속에서 자라난 '헛똑똑똑한' 아이는 공감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성장하고 사회에 나와 또 다시 기득권을 형성하며 사회를 썩어 들어가게 만드는 악순환의 시적점이 된다.

물론 그릇된 사적 신념으로 무장하고 개인적 실익에만 매몰되어 스승으로서 존경의 대상에서 스스로 제외한 선생님에 대한 민원 제기는 막을 수 없다.

다만, 부당함이 있다면 근거와 사회적으로 합리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생각하는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도 같다는 오역된 가치관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말할 것도 없이 법령의 구조적 결함을 수정하는 작업은 국회가 빠르게 움직여 줘야 한다.

개인의 실익과 감정 해소를 위해 선생님과 제자 간에 마땅히 지켜야 할 상호 존중의 신뢰가 민원의 오남용으로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 깊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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