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소나기>, 윤흥길의 <장마>와 같은 소설의 공통점이 있다면 비(雨)를 배경으로 우리의 정서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 기록서에도 비와 관련된 장맛비 기록을 보면, 여름 장마와 가을장마로 민가가 떠내려가거나 압록강의 물이 넘쳐 병선이 표류했다는 내용이 나올 만큼 단골이다.
이처럼 비와 장마는 우리네 삶에서 빼지 못할 늘 함께 해온 반가우면서도 불편한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최근 2주 동안 매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2~3일씩 기나긴 비를 뿌리고 곧바로 한낮 기온이 30도에 다다르는 변화무쌍한 기후를 보면 장마는 예고 없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 중부에 기록적 폭우로 사상자가 속출한 가운데 지난 3일 일본 기상청은 평년보다 7~8일 빠른 '이른 장마 시작'을 선언했다.
지리적 차이를 고려해 볼 때 일본과 한반도의 장마 시기는 며칠의 차이는 있겠지만 얼추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다.
반면에 우리 기상청 박정민 예보관은 아직 한반도에 장마가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는데, 일본과 우리나라는 장마를 판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일본은 비가 연속해서 내리는 시기를 중요하게 보는 반면에 우리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동 경로 등 각종 지표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사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우리의 기상 예보는 상당한 수준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양질의 자료들과 슈퍼컴퓨터의 데이터를 종합한다 하더라도 이제 기후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불안요소 아닌가.
기상청에서 말하는 장맛비의 기준처럼 '고기압' 그리고 '저기압'과 같은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의 발생 빈도 역시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
지난 1일 행정안전부는 비가 많이 내리면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전국 87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에서, 안전 미흡 사례 222건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정말 형편없는 수치 아닌가, 지난해 폭우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벌써 잊었는지 아직도 안전 미흡 사례가 수백건이 남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장마 기간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한 해 강수량의 30%가 집중돼 내리는 만큼 비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예측이 어려운 장마와 큰 비, 어쩔 수 없는 기후변화의 그림자다.
본격적인 장마가 눈앞에 있는 만큼 정부와 안전에 관한 유관기관의 책임 있는 당국자는 너 나 할 것 없이 빠른 점검과 개선을 시작해야 한다.
막힌 배수로는 없는지, 침수나 산사태 위험지역은 안전한지, 그리고 재난안전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기상청의 장마'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재난 안전 계획'에는 큰 비와 장마가 이미 시작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