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교정과 국방부 청사에 세워졌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의 주역으로 독립군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흉상 이전의 주된 이유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이었다. 1948년도에 창설한 대한민국 군대가 1920년대 공산당 전력까지 색출해 '처단'하는 모양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시기는 좌·우의 이념적 대립이 없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연합군으로 같은 편이었다. 연합군의 상대는 당연히 일본제국주의였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와 싸우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한 것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좌·우 이념 대립이 나라를 두 동강 낼 때 홍범도 장군은 이미 고인이었다.
반시대적인 '반공'이 80여년의 세월을 지나 홍범도 장군을 욕되게 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국가적 행사로 성대하게 모셔온 분이 하루아침에 후배들에게 배신당한 모양새다.
한 발 더 나아가 육사는 육사의 뿌리가 독립군이 아니라는 이유도 들고나왔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발상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독립군이 아니면 누가 우리 군대의 뿌리란 말인가.
지금 우리 역사는 온통 반공으로 회귀하고 있다. 올 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일본에 대한 사과와 보상요구는 없었다. 오히려 자유와 반공을 역설했다. 광복절 기념사가 아니라 마치 반공 웅변대회 같은 착각마저 일으켰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념적 잣대보다는 국가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한반도만 신 냉전에 갇혀 있다. 아니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반공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반공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이다. 우리 민족의 분단 고착화는 결국 일본에게는 방패가 된다.
시민단체의 후쿠시마 오염수 시위에 대해서도 엄단을 강조한다. 가해자인 일본에 항의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과 싸우고 있다. 나아가 "과학도 모르는 선동세력이 불신을 조장한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정부는 얼마나 과학적으로 분석했는가 묻고 싶다. 일본이 내준 자료가 과학적인가. 그들은 방류를 결정했고 이미 시도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증거'는 뻔한 것이다. 정부는 어떤 근거로 '과학적'이라 말할 수 있는지 명백히 제시해야 한다.
군사정권시절 좌익은 말 그대로 호랑이 등이었다. 올라타면 그대로 패가망신하는 공포였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한참 되었다. 국민들의 이념적 수준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반공'은 유효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마땅히 배척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공'이 마치 귀멸의 칼날처럼 휘둘려져서는 안된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날 듯 국가도 건강한 좌·우 두 개의 날개로 날아야 추락을 면할 수 있다. 건강한 진보와 공산주의는 구분돼야 한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러브콜도 경계해야 한다. 자칫 이순신 장군마저 소환되는 왜곡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홍범도 장군의 사례를 보면 지나친 비약만도 아니다. 이념적 편협성과 왜곡된 신념은 상상하지 못할 수많은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 이는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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