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못 쓰는 리튬이온배터리 불길
배터리 교체 주기·관리 책임 불분명

▲ 27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당국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 연합뉴스
▲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당국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후 8시 20분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화재는 5층 전산실 리튬이온배터리 교체 작업 중 전원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10시간에 걸친 진화 작업 끝에 27일 오전 6시 30분쯤 초진됐다.

하지만 리튬이온전지 특성상 잔불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소방당국은 공식 브리핑에서 "전산실 내부에 192개의 리튬이온배터리가 있었고 대부분 연소됐으며, 남은 일부도 현재 연소 중"이라고 밝혔다.

소방청 한 관계자는 "서버 손상 우려로 대량 침수 진압이 어려워 진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튬배터리 화재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물 소화 방식이 오히려 화재를 키울 수 있으며, 민감한 장비가 밀집된 국가시설에서는 침수 방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화재로 정부24, 국민신문고, 모바일 신분증 등 70개 정부 온라인 서비스가 중단됐다.

행정안전부는 1등급 시스템 12개, 2등급 시스템 58개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정부 이메일 시스템과 일부 119 영상·문자 신고 기능까지 작동하지 않아 국민 불편이 크게 가중됐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며 피해 복구와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정부 서비스 장애 관련 브리핑'에서 참석자들(왼쪽부터 윤상기 소방청 장비기술국장, 이용석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 김민재 차관,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이 고개숙여 사과 겸 인사하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정부 서비스 장애 관련 브리핑'에서 참석자들이 고개숙여 사과 겸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재해 복구 시스템은 이번 사태에서 실질적인 서비스 복구에 실패했다.

화재가 발생한 전산실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자체 운영하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인 'G-클라우드 존'에 해당하며, 이곳의 스토리지(데이터 저장)는 실시간 재난복구가 이뤄진다. 이는 국민의 데이터 자체는 광주·대구 센터 등으로 안전하게 복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광주·대구 센터는 실시간으로 복제하여 즉시 복구가 가능한 '핫 사이트(Hot Site)'가 아니었다. 대신 수 시간 이상 지연이 불가피한 '워밍 사이트(Warming Site)'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데이터는 복제되었더라도 서비스를 구동할 서버와 네트워크를 즉시 전환하는 데 실패하며 골든타임 내 복구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행안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대전·대구·광주 3개 센터로 이뤄진 국정자원 센터 가운데 대전·광주는 재해복구 시스템이 일부 구축됐지만 필요 최소한 규모도 있고 스토리지(저장)만 있거나 백업만 있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리튬이온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한 지 12년이 지난 노후 장비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핵심 전산실에 노후 장비가 방치된 것은 예산 부족과 관리 소홀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특히 배터리 교체 주기와 관리 책임이 불분명한 가운데, 공사 중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케이블 해체 작업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공사 안전 매뉴얼 위반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전산실을 단순한 사무 공간이 아닌 '국가 핵심 보안 시설'로 인식하고, 소방·방재·전원 설비에 대한 법적 규제와 정기 감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현재 피해 보상 창구 개설을 검토 중이며 △노후 장비 전수조사 및 교체 계획 △재난 복구 시스템의 '핫 사이트' 수준 상향 등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장비 결함이라기보다는 노후 장비 방치와 공사 관리 실패 등 관리 당국의 안일함과 시스템 집중화라는 정책적 오류가 낳은 복합적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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