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올 겨울은 그에 못지않은 강한 추위가 있을 거라 했는데 큰 고비 없이 지나갔다. 경칩이 지난지 보름이 넘었으니 이쯤 되면 봄이 발 밑에 머물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은 중 장년에게는 특히 버거운 계절이다. 험악한 날씨도 그렇지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잔뜩 움 추리게 된다.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고 세월은 켜켜이 먼지만 쌓이고 있다.
필자도 급행열차 타듯 오 십대를 보냈다. 육십이 넘은 지금도 열차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종착점을 향 해 치닫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목적지는 더욱 뚜렷해지고 여행하는 기분도 점점 무감각 해진다. 한 마디로 인생이 참 재미없을 시기다.
위기의 시기에 나를 일깨워 준건 인터넷에서 무심코 발견한 문화센터 악기 강좌였다.
무엇을 배울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플루트 강좌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예전부터 기타와 오카리나 휘슬 등 악기를 즐겨했지만 플루트를 정말 배우고 싶었다. 번쩍거리는 악기도 폼 나고 연주자의 모습도 폼이 나 보였다. 순전히 그 이유 때문에 바로 클릭을 해버렸다.
예상했지만 강의실에 가니 나는 최 고령자였다. 그 연세에 대단하시다는 진심인지 허투루 하는 말인지 모르는 인사를 듣고 열심히 배웠다. 덕분에 지금은 웬만한 우리 가요 정도는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 강의 시간에 배우는 클래식 보다 우리 가요만 연습한 탓이다. 음악은 자기에 맞는 걸 해야 즐겁다.
자신감을 얻으니 없던 욕심이 생겨 접었던 골프도 다시 시작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했으나 발전이 없다. 현실을 깨닫고 나이에 맞게 살살했다. 오히려 타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욕심을 버리니 얻는 게 많다. 그걸 사서삼경이 아닌 골프에서 배운다.
더욱 자신감이 충만해져 덜컥 대학원에 진학했다. 역시나 나는 최고령자였다. 조용히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려 했으나 나이가 벼슬이라고 회장을 맡아 버렸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려 했고 덕분에 젊은 친구들과 좋은 벗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배우는 미 적분, 함수, 통계와 처음 배우는 인공지능으로 헤매기도 했으나 나이를 40년 거꾸로 먹은 기분도 얻었다. 평생 함께할 추억이다.
요즘에는 유튜브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주로 철학과 역사를 즐겨 듣다 갑자기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에 빠졌다. 물론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래도 재밌다. 뭔가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이토록 즐거운지 예전에는 몰랐다. 너무 늦게 깨달었지만 반면에 더 늦지 않게 깨달은 게 다행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연세에 얼마나 써먹는다고 공부하냐 두 다리 멀쩡할 때 놀러 다니라 한다. 그럴 때 마다 내 답은 한결 같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이제 봄이다.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고 활기차게 세상에 나가자. 이 땅의 중 장년 들이여 내 세상은 내 것이다. 그냥 허비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만의 아름다운 마감을 위해 올 봄에는 슬기로운 취미 하나 가져 봄은 어떠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