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 "솜방망이 처벌"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 검찰 수사에 대비해 증거 자료를 인멸·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박철 전 SK케미칼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2019년 4월 기소 후 3년 4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31일 재판부에 따르면 주진암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은닉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부사장 등 피고인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않고 SK케미칼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각종 자료를 은폐하거나 없애려 했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함께 기소된 양정일 전 SK케미칼 법무실장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검사, 판사 출신이다. 현재 다른 SK 계열사의 임원을 맡고 있다.
이외 SK케미칼 임직원 3명에게도 징역 10개월~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박 전 부사장 등은 SK케미칼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때인 1994년 서울대에 의뢰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고의로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실험 보고서에는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담겨 있었지만 SK케미칼은 서울대 실험 결과 안전성이 확인돼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 언론·국회 등에서 실험 결과 보고서를 요구하자 2013년부터 6년에 걸친 기간 동안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박 전 부사장 등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SK케미칼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보고 실험 보고서 등을 폐기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유죄 인정했다.
임직원 일부가 보고서에 독성물질 'PHMG' 성분 부분을 삭제하는 식으로 증거를 인멸한 점도 유죄로 봤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관계 문서를 삭제하고 노트북과 이동식저장장치 등을 포맷한 것으로 밝혀졌다.
SK케미칼 임직원들의 1심 선고 결과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피해자들은 판결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 법원사거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 임직원들이 이정도 형량으로 진정성 있는 참회를 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며 법원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재판이 3년이나 걸렸음에도 너무나도 낮은 형량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며 선고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김기태 천식질환피해자구제인정및인정범위확대추진촉구모임 대표는 "SK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두고 ESG경영을 말할 수 없다"며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서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이재성씨는 "이 나라에서 판·검사를 지낸 사람들이 SK의 변호사로써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이 비극"이라며 개탄했다.
강홍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법원은 내 몸이 증거라고 외치는 피해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줘야 하며 SK 그룹 또한 더 이상 책임 이행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