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 편지] 이런 소망은 어떠세요
[아나돗 편지] 이런 소망은 어떠세요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19.07.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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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생활인이면서 수도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교회를 운영하는데 경영이 필요하기에 때로 경영자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활수도자이기를 더 원합니다. 그리고 사업체처럼 전문적인 경영을 해야 할 정도로 예배당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작은 교회를 더 선호합니다. 작은 교회를 온몸으로 섬기는 생활수도자가 되기를 늘 바랍니다.

교회 개척예배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아는 친구 하나가 교회 경영에 신경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냥 수도자 겸 생활인으로 살다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 수도자로 살지 못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지면 목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가 떼를 써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그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인간적인 배려는 그분이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재정을 염려하는 친구에게 굳이 헌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교회는 운영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 교회를 운영하게 된다면 예배당의 문을 닫겠다고 했습니다.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늘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수도자는 기본이 청빈과 금욕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기에 예쁜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이러니 절욕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금욕과 청빈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수도자의 길을 탐색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교우들이 감사할 뿐입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생활수도자로 살다 보니 삼위일체신론이라는 잘 이해되지 않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우주의 따스한 품과 같은 그분이 좋아서, 그분을 연모하는 시를 지었던 20대의 기억이 가끔 되살아납니다. 과거에 젖어 사는 것은 후퇴하는 인생이라고 하는데, 젊은 날의 그 열정만큼은 자꾸 생각이 납니다. 새벽마다 그분께 사랑을 고백했던 그 시절이.

20대에는 하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분을 시(詩)로 노래할 만큼. 제가 가진 광주(光州)에 대한 기억과 잘 적응하지 못했던 대학생활로 인한 삶의 응어리를 풀어 준 그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미치도록 그분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대학도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공수업은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고, 머리는 온통 다른 생각과 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학을 다시 가는 것 외에 전공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기에 길이 오직 그분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 교회의 위임목사가 된 후 제게 주어진 생의 계획은 제가 쓸 수 있는 지면의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저의 그릇에 비해 너무 큰 일을 벌여놓은 것은 아닌지 때론 의문도 듭니다. 감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개척하다니요. 언감생심(焉敢生心), 품지 않아야 했던 꿈을 꾼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다만 여전히 예수님이 좋기에,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세계인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제 곁에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기에 이 고마움을 따라 갑니다.

회갑을 5년 정도 남겨 놨습니다. 회갑이 지나면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예전에 꿈꿨던 것처럼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으며 공의와 정의가 그윽한 하나님 나라를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뿐만 아니라, 내 기쁨을 통해 타인도 비전을 볼 수 있는 자리이타(自利異他)까지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이순(耳順) 이후의 소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활수도자의 길은 늘 수도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수도자와 얽힌 삶의 인연들이 곁에서 묵묵히 요구합니다. 이 요구를 안 들어주면 생활이 수도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생활수도자는 언젠가 끝날 뜨거운 감자와 같은 생활을 수도자의 소망으로 다독이면서 안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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