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 편지] 작은 공부방과 큰 서재
[아나돗 편지] 작은 공부방과 큰 서재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19.1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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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의, 안해에 의한, 안해를 위한 주처시하(主妻侍下: 집안의 모든 주도권을 안해가 쥐고 있음)가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안해는 '안의 해'라는 뜻으로 아내의 고어).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지켜 오상고절(傲霜孤節)의 미를 간직하자고 외쳤던 '가부장의 시대'는 집안에서 사라졌고, 텔레비전 채널 결정권에도 이미 항복문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침마다 안해가 즐겨보는 모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 본 것은 '○○씨 행복하세요'인데, 그의 목소리가 자꾸 마음을 울립니다. 자기가 진짜 행복해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일본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돈도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법니다. 사람이 돈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돈을 법니다. 저처럼 돈의 위용을 무시하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돈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친구 아버님의 말씀대로 대학에 진학하지 말고, 고향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야 합니다. 모든 게 자수자득(自修自得)입니다. 돈보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했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조금 죄송한 것은 교회에서 교우들과 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를 하는 것보다 아나돗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교회 일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있으니 참 민망한 일입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그런데 제 몸이 가진 기운이 그러하니 이건 도무지 어쩔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일본인 ○○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진짜로 행복해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냥 주어진 시간까지만 아주 제대로 버티다 가자는 각오까지 다졌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인생을 4단계로 구분해, 50~75세를 임서기(林棲期)라고 했습니다. 다석 유영모는 50세에 해혼(解婚)했고,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나이도 30살'쯤'이라고(누가복음 3:23)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평균수명 등을 고려했을 때 그분의 공생애 활동 시기는 오늘날의 40~50대에 해당합니다. 공자(孔子)도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으니, 50대는 무슨 특별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마음껏 볼 수 있는 개인만의 공간을 원했기에 따로 비상금을 모아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급작스러운 일이 생겨 모두 안해에게 갖다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지만 재개발을 기다리는,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는 작은 그곳에서, 제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동안은 텔레비전을 켜거나 조그마한 소음도 낼 수 없게 하는 작은 독재자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어느 날 안해가 이사를 가야한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집 이사에 관한 것은 남편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폭력적인 발언까지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통보받고, 어쩔 수 없이 이사를 와보니 예전보다 조금 넓은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하임재(廈恁齋: 큰집인 하늘을 생각하는 곳)라고 명명한 조그마한 공부방과 강동도서관이라는 커다란 서재가 생겼습니다.

오늘도 하임재와 강동도서관에서 완전한 소멸과 주처시하(主處侍下: 주님인 야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감)를 꿈꿉니다. 저에게 70살까지 목사로서 남겨진 10여년의 세월도 저의 능동적인 선택으로만 모두 열리지 않을 것이기에, 성령님께 맡겨야 합니다. 목사 겸 인문학을 가르치는 간사로 주어진 삶의 길이 그러하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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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도 2019-10-19 13:36:05
하느님의 뜻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