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란 성경의 선언을 "그래, 너는 죽어서 천국에 가라. 나는 천국이 만원이라고 하니 천원짜리 지옥에나 갈련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한 구원은 인간의 삶에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통찰이고, 구원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는 인류 역사에 목표가 있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순환적이라면, 때에 따라 어떤 과제가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있고 이게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면, 우리의 시간은 어떤 목표를 이루라고 할당된 것이고, 돌고 도는 때에 따라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참호 속에서 적군과 싸우고 있는 사병은 '대체 이 전쟁이 왜 일어난 것인지, 전쟁의 전체적인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 힘듭니다. 최전선에 있는 사병은 죽지 않기 위해 자기에게 덤벼드는 적과 싸우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사령관이나 군대의 통수권자는 전쟁의 목표와 전체적인 흐름을 압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작전을 짭니다. 사병에게는 이런 권한이 없는데, 만약 사병에게 이런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가 수행하는 전투에서 다른 대처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게 성경에서 말한 구원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개인이 수행하는 참호전투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은 그가 알 수 없는 우주적인 거대한 신앙공동체로 연결됩니다. 이 과정에서 구원 계획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개인의 꿈이 일치하는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고 싶은데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만드신 계획도 의료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는 게 구원 섭리기에 모든 게 그의 꿈대로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그의 꿈 때문에 구원 섭리와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목사가 되고 싶은데 하나님도 그를 목사로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그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두 가지 일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의 계획 사이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사병이 각 개인의 참호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도 이기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각 개인의 참호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지게 됐을 때는,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걸 선택해야 합니다. 참호전투에서는 이겨도 국가 간 전쟁에서 지면, 최종적으로 패전국의 병사가 되기에 패전한 국가의 일원으로 취급받습니다.

구원 섭리와 삶의 계획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게 적용됩니다.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은데, 구원 섭리가 그것과 다르면 일이 잘 안 풀려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갈등으로 인해 인생에 마찰열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면 성경은 이를 고난의 범주에 포함해서 해석하라고 합니다. 고난은 인간이 거룩함을 얻으려는 방편입니다.

내 꿈이 이뤄지는 행복과 섭리가 성취되는 거룩함이 충돌할 때, 거룩함에 방점을 찍고 구원이 전하는 질서를 따르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인간이 거룩함을 거부하고 내가 세운 삶의 계획이 성령님이 이끄시는 섭리를 앞서면 나중에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둘이 충돌할 때 내 계획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먼저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거룩함 속에서 내가 누릴 행복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이기에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다시 전쟁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거룩함을 먼저 추구하면 개인이 수행하는 참호전투에서 지더라도 승전국의 병사가 돼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대를 선택하면 참호전투에서 이기더라도 패전국의 병사가 돼 혼자서 삶을 복구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이뤄져도, 폭풍처럼 밀려오는 허무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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