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몇 해 전에 겪었던 일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북향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들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북한을 알아간다는 건 섣부른 당위명제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후손에게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주기 위해 끝없이 가꿔가야 하는 과제입니다.

새벽 2시 8분경에 북향민 제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울음에 젖은 비명이었습니다. 북향민끼리 모여 사는 지역인지라 이웃을 믿고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깜빡한 채 문을 잠그지 않고 잤는데, 그때 물건을 훔쳐 갔던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만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놀라서 소리를 질렀더니 범인이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나눔시간에 혼자 지내는 북향민 여자 제자들에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창문까지 반드시 잠그고 자라고 했었습니다. 그 제자도 이렇게 했지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서 멍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새벽 5시 40분에 카톡이 왔고, 도둑이 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범인을 잡고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탈북민 남자였습니다. 누가 어떻게 잡았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물어보는 게 대한민국에 혼자 온 제자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것 같아서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사건이 정리된 후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자의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연락했던 형사들이 범인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발가벗은 채 칼을 들고서, 여자 혼자 사는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려고 번호키를 만졌다고 하니, 무슨 일을 하려 했던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의 집 앞에서 모종의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범인이 발가벗은 채로 숨어 있다가, 다른 층에 사는 북향민 중에 문을 잠그지 않았던 사람들의 집을 노렸다고 했습니다. 그 집에서 몰래 물건을 훔치려다가 들켰고, 도망치다가 잠복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그 뒤 텔레비전 뉴스로 이 사건이 간단하게 보도됐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북향민은 대략 3만3000명 정도입니다. 이들 중에 어떤 자가 다른 북향민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여자 혼자 사는 집 앞에서 뭔가를 시도하려고 설쳤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에 붙잡히자, 길에 드러누운 채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대한민국의 법은 이런 것이냐"고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또 범인의 엄마는 제자에게 전화해서, 없어진 물건도 없고 하니 자기 아들을 위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경찰에 말해 달라고, 같은 북향민끼리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고 했습니다. 제자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 '엄마라고 해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0여 년 넘게 북향민과 같이 길을 걷는 교회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외부지원을 거의 안 받습니다. 이 사역은 교회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교우들이 말하고 있기에, 무료로 대안학교를 운영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해 아래 세상의 사람은 거의 다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들은 특별한 백두혈통이라고 우기는 건 가짜입니다. 또 그렇게 전해 들은 사고방식의 파장을 다 버리지 않고, 대한민국에까지 와서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왔으면 북한에서 배운 잘못된 걸 버리고, 탈북자가 아닌 시민으로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제 조그마한 바람처럼, 대한민국 시민으로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많은 북향민에게 해를 끼치는 탈북자가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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