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기에,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올바른 트랙(track)으로 가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윗글을 쓴 사람이 지지하는 진화론은 DNA의 끝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냅니다. 인간이 끝없이 생존하며 번식할 수 있을까요. 시종(始終), 처음과 끝의 입장으로 보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시각인 종시(終始), 끝과 시작의 입장으로 보면 영구적인 번성은 처음부터 허상입니다. 인간에게 끝이 있기에 DNA의 번식도 끝이 있습니다. 따라서 방향 없는 맹목적 번식보다 올바른 파생(派生)이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행복과 더불어 거룩함이 필요합니다. 나의 DNA를 남기는 것보다, 인간의 DNA를 남기는 게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에 그러합니다. 이때부터는 찰스 다윈의 이론에 근거를 둔 '살기 위해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넘쳐나는 우울함을 견디기 힘듭니다. 행복만으로 생의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없는 시기가 되면, 행복과 다른 가치이면서 행복을 보완하는 걸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함,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구별되는 가치 추구, 우리 후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 등이 이때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시공간에 내재해 있는 한계성으로 인해 올곧은 DNA의 확산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빛을 발합니다.

칼 세이건이 인간과 침팬지의 DNA 유사성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과 오랑우탄 사이의 유전자적 동일성은 96.4%이고, 침팬지는 98.4%입니다. 둘이 가진 차이는 1.6%입니다. 이 1.6%에 의해 인간과 침팬지가 나뉩니다. 따라서 산술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침팬지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거의 비슷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분기점을 통해 서로 갈라지기 시작한 건 대략 600만 년 전입니다. 두 종이 완전히 갈라진 건 540만 년 전쯤이고, 아무리 빨라도 630만 년 전보다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침팬지가 인간이 될 수 있는 1.6%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무려 600만 년이 걸린 셈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큰 부분이 성(性)과 죽음의 제의인데, 1.6% 안에 이것에 대해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인식하는 코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부분이 동물 유전자와 같기에, 끊임없이 동물이 되라는 유혹을 인간이 받습니다. 동물로 환원하려는, 600만 년 전으로 돌아가려는 아주 강한 의식이 인간 내부에 뿌리내려 있습니다.

성적 요소에는 이런 유혹이 더 심하기에, 1.6%의 DNA를 포기하면 성에 관해서는 인간도 동물과 거의 비슷한 존재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동물에 가깝게 될까요. 동물계에서 모자상간은 거의 없지만 부녀상간은 많습니다. 그래서 1.6%를 포기할 경우 동물에 더 가깝게 되는 이는 남자입니다.

진화론의 가치관은 양날의 칼입니다. 같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현장이 나타나지만, 선택은 오롯이 인간의 몫입니다. 인간이 DNA가 98.4%나 같은 침팬지처럼 살겠다고 하거나, 다른 1.6%에 의지해서 살겠다고 하거나 모두 그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다만 1.6%에 의지해서 살겠다고 했을 때는 인간의 무늬를 어떻게 가꿀 것인지 살펴보는 인문학(人紋學)이 꼭 필요합니다.

진화론이 의미 있는 건, 삶에서 이런 설명이 필요한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의 모든 걸 설명하겠다고 외고집을 피우거나, 인간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사회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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