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아주 작은 빛
[정이신 칼럼] 아주 작은 빛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승인 2022.07.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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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천둥이 울린 후 번개가 치면 순간적으로 사방이 밝아지며 길이 보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덕에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며 비가 왔던 날도, 무서웠지만 당황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가야 할 길을 찾아 집으로 왔습니다.

사방이 다 캄캄하면 아주 작은 빛도 밝게 보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아주 작고, 저희가 드러내는 빛도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처럼 밝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캄캄한 곳에 있으면서 빛을 갈구했던 이들이 저희를 찾아옵니다. 어두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작은 빛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사람들이, 저희가 섬기는 교회와 대안학교가 어디인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옵니다.

드러내고 있는 빛의 크기가 작기에, 빛 덩어리가 만든 공해에 찌든 사람들은 저희에게 왔다가 실망감을 표현하고 그냥 갑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고맙습니다. 어둠에 꽉 절여 있는 곳에서는 성냥불 하나, 촛불 하나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저희에게 오기에, 갈등이 잘 안 생깁니다. 역설적이게도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을 만드는 이는 대부분 위임목사인 저입니다.

로마제국에서 스파르타쿠스가 노예를 모아 봉기한 후 이에 가담했던 수천 명의 사람이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중 누구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유다의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이름은 압니다.

로마제국을 위협했던 수천 명의 사람이 일으킨 것처럼 커다란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 속했던 작은 땅이었고, 곡물의 수확량도 많지 않았기에 주로 좌천된 사람들이 총독으로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치범이란 누명을 쓰고 십자형을 받은 사람이 드러낸 빛이 인류에게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저희는 이 빛을 받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이미 구원받은 존재지만 그걸 알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빛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초월적 사건으로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다른 차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를 표현한 게 Extra nos pro nobis(엑스트라 노스 프로 노비스), '구원은 우리 밖에서 우리를 향하여'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그런데 이건 인간의 삶에서 우연과 필연이 서로 꼬리물기를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삶이 우연의 연속이라면, 그게 만든 고리가 다 쏟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우연 같아 보이는 흐름 속에 필연의 사건이 개입한 것이라면, 이게 말하는 게 뭔지 알아봐야 합니다. 나는 왜 여기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 물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빛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준 특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 나는 어떤 실존적 결단을 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삶이 겉으로는 우주의 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 방향과 주도권을 두고 하나님과 인간이 충돌했다고 전합니다. 그 결과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욕망의 빚더미를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는 이걸 바로잡아 인간이 원래 내야 할 아름다운 빛을 내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타국에 있는 자국민의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으면서도, 반대로 그 나라에 있는 다른 종교의 자유는 동등하게 보호해 주지 않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콥트교회의 발자취를 봐도 그렇지만, 현대에도 이런 차별이 여전합니다. 중동의 모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필리핀 이주 노동자가 요구했던 교회 건립 청원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우주의 빛은 사방을 밝히지만, 인공으로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쪽으로만 강하게 비추는 빛은 욕망의 빚을 양산합니다. 그래서 작은 빛은 저희가 여전히 풀어가고 있는 과제입니다. 저희가 낸 조그마한 빛이 한쪽만 비추는 공해 덩어리의 빚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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