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해결하기 위해, 적격 TDF(Target Date Fund),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IRP계좌 이체제도 등이 도입됐지만, 이들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이제 다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개별 제도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퇴직연금 전체를 아우르는 퇴직연금 종합계획이 먼저 필요한 이유다.
TDF는 생애주기에 맞춰 수익성자산(주식 등)과 안정성자산(채권 등)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기 때문에 퇴직연금에 가장 적합한 상품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2018년에 적격 TDF에는 적립금의 100%까지 투자하는 것이 허용됐지만, 작년말 현재 TDF의 비중은 6%로 미미하다.
2023년에 도입된 사전지정운용제도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이한 제도가 됐다. 운용방법을 지정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다는 목적과 달리, 상품을 지정할 권한이 가입자에게만 있어 사실상 '투자상품 추천제'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디폴트옵션의 자동지정상품으로 TDF가 많이 이용되지만, 우리나라는 TRF(Target Risk Fund)만을 적격상품으로 허용했다. TDF가 활용될 여지를 없앤 것이다.
더욱이 기존 계약형과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기존 계약형에서 미리 지정한 운용방법은 무효화시키고,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적격상품으로 지정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그 수익률은 기존 계약형보다 못하다.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서 퇴직연금사업자 역할은 단순 중개기관 수준이다. 퇴직연금용으로 제공하는 펀드나 예금 등의 상품은 8200여개로, 가입자가 고르기에는 너무 많다. 일반 금융투자 상품의 복제품이며, 사업자별 차이도 거의 없다.
사전지정운용제도에서는 가입자의 포트폴리오나 개별상품의 운용권한이 전혀 없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적격상품을 구성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권한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다. 적격상품의 위험수준 변화에 대한 대처방법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계약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금형'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운용의 전문가 집단이 거대 자금을 모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단다.
올해는 고용노동부가 기금형 도입에 적극성을 보이고, 여러 의원들이 기금형 도입 법안을 내는 등 어느 때보다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대안들은 이름만 '기금형'으로 같고, 세부 내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전지정운용제도의 개선을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으므로 기금형 도입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인해 혼란만 가중된단다. 계약형 중심의 시장 위축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미 도입된 제도와 새로운 기금형 논의에는 두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저조한 수익률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가입자의 선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가입자들이 잘 선택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가입자들이 선택을 잘했다면,' '이것을 선택한다면'이라는 희망은 해결책이 아니다. 기존의 펀드나 사전지정운용 적격상품에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낸 상품은 있다.
두 번째는 각각의 제도가 따로따로 존재하며, 서로를 경쟁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제도와 참여자들은 상호 보완적일 수 있으며, 서로의 역할 분담을 통해 창출될 수 있는 시너지효과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
퇴직연금 종합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기금형과 계약형, 자산운용사, 디폴트옵션과 TDF 상품 등 각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한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 디폴트옵션이 다른 제도와 경쟁관계를 보이는 다른 나라의 사례는 없다. 다른 나라의 디폴트옵션은 그저 퇴직연금 가입 과정의 절차일 뿐이다.
둘째, 장단기에 따른 기간별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단기의 핵심 과제는 가입자 선택 문제 해결이며, 중장기에는 비용효율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5년간 연환산 수익률이 7%가 넘는 영국도 보다 퇴직연금의 비용효율성에 맞춰 개혁법안을 마련 중인 것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구슬을 더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 종합계획서를 작성할 때다.
■ 신중철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지속가능연구소 연구위원(경영학박사) = 증권사와 종합금융에서 10년 이상 파생상품과 증권의 리서치와 투자업무를 했다. 펀드평가사에서 20년 이상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펀드·연기금·퇴직연금 등의 평가와 컨설팅을 했다. 서울시립대·국민대·한양대 등에 출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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