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산업 불황으로 공동 대주주인 DL그룹과 한화그룹간 갈등이 공개적인 책임 공방으로 격화되고 있다
11일 여천NCC의 부실 문제를 두고 DL케미칼은 한화그룹에 모럴 해저드라고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에 한화그룹은 DL의 주장과 저가 거래 관행 등을 지적했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책임에 소홀하거나 이기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여천NCC는 전남 여수 산업단지에 위치한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로,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두 회사에 공급한다.
여천NCC에 대한 3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지원 여부를 두고 한화와 DL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한화는 자금 대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 DL은 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DL은 11일 입장문을 통해 "원인 분석 없이 증자만 남발하는 것은 여천NCC의 정상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는 책임경영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황 악화 등으로 올해 3월 DL과 한화가 1000억원씩 증자를 실행했다"며 "여천NCC는 이 3월 증자로 연말까지 문제가 없을 것처럼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천 NCC에 대한 묻지마 지원은 공동 대주주로서 무책임한 모럴 해저드이자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가격을 고수하는 등 자사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화는 반박문을 즉각 발표했다.
한화는 "대량 거래에 따른 물량 할인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화가 가격을 고수해 손해를 누적시켰다는 DL 측 주장을 부인했다.
이어 "DL이 여천NCC를 통해 2조2000억원 배당을 받았음에도 1500억원 지원을 거부해 부도 위기를 초래했다"며 "언론 비난이 커지자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여천NCC는 최근 3년 동안 7758억6662만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했다. 이러한 불황에 여천NCC는 올해 3월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시행한 뒤 6월에 추가로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에 1500억원씩 합산 3000억원의 증자 또는 자금 대여를 요청했다.
DL케미칼은 11일 DL과 대림으로부터 1778억원, 222억원을 증자받아 여천NCC 유상증자 안건을 통과시켰다.
여천NCC 입장에선 한 시름 놓은 셈이다.
그러나 원료 공급 계약 재협상과 국세청 과세 해석을 둘러싼 DL과 한화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한화 측은 "올해 초 국세청이 여천NCC에 법인세 등 1006억원을 추징했으며 이 가운데 DL과의 거래 비중이 96%에 달한다"며 "한화의 에틸렌 거래 가격은 시가로 인정됐지만 DL에는 저가 공급 판정이 내려져 489억원이 추징됐다"고 설명했다.
DL 측은 "여천NCC에서 생산된 에틸렌 가운데 70%를 한화가 가져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과도한 할인으로 한화는 매년 수백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를 얻었고 여천NCC의 수익성은 떨어졌다"며 한화의 저가 공급이 손실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는 5년 단위 재협상과 시가 연동, 외부 전문가 검증을 주장하는 반면 DL은 시장가 대비 낮은 가격을 20년 장기 고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며 계약 조건 견해차도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이 단기 유동성 문제 해소로 마무리될지 구조 개선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