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130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신청한지 5년만이다.
법무부는 엘리엇이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관련 중재 판정부는 엘리엇 쪽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에 690억원과 지연이자 지급을 명했다고 20일 밝혔다.
엘리엇 청구금액 9917억원 가운데 배상원금 기준 7%가 인용된 액수다.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1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법률 비용으로 정부는 엘리엇에 372억5000만원을, 엘리엇은 정부에 44억5000만원을 각각 지급하게 된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에 따라 피해를 봤을 때 국제 중재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했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해 합병이 이뤄졌는데 비율은 1 대 0.35로 삼성물산 주주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 의사 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청구액은 9917억원으로 근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었다.
엘리엇 주장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에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법원에서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2019년 8월 대법원은 국정농단 사건 판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묵시적 청탁을 통해 합병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청와대 지시로 국민연금을 압박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지난해 4월 실형이 확정됐다. 재판 결과는 엘리엇 주장을 뒷받침할 때 인용됐다.
하지만 법무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국가의 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권리를 행사한 것은 국민연금이고, 정부의 개입이 없었을 때 합병에 반대했을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엘리엇을 보호하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짧은 기간 안에 지분을 큰 폭으로 늘렸던 엘리엇은 다른 증권사 명의로 주식을 산 후 한꺼번에 넘겨 받는 파킹 거래 의심을 받았다.
2016년 검찰은 금융당국의 의뢰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엘리엇의 비협조로 입증에 실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엘리엇 청구금액 9917억원 가운데 배상원금 기준 7% 인용돼 우리 정부가 93% 승소한 것"이라며 "법률 비용은 우리 정부가 엘리엇보다 8.5배나 부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판정문을 분석하고 있어 추가 설명이 어렵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