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재난대응조직이 모두 하나의 통신망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고 견고한 공조체제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원화된 재난안전 통신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1조5000억원을 들여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을 벌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작업 지연 원인으로 지목된 해경·해군이 서로 다른 통신망 사용을 개선하는 취지로 재난 대응 기관들의 무선 통신 주파수를 통일시키는 사업이다.
행안부는 2018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3월 전국 단위 단일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다. 첨단 무전기 보급 사업은 그중 하나다.
행안부는 지난 7월 '재난안전통신망 기본계획'도 수립해 발표했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은 "경찰·소방 등 재난 안전 관련 기관이 재난·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1조5000억을 투입하고서도 막상 사고가 터졌을 때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 용산구청은 이른바 '4세대 무선통신기술(PS-LTE)'이 적용된 무전기도 구입했다. 용산경찰서 100개, 용산소방서 81개, 용산구청 21개다. 이 무전기를 쓰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구청 직원이 동시에 소통하며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전기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재난대응 기관들의 실제 그룹통화 이름으로 용산재난상황실, 서울재난상황실, 행정안전부를 포함한 40개 기관이 모인 중앙재난상황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각 그룹의 최초 통화시간은 그나마 가장 빠른 것이 밤 11시 41분이다.
가장 빠르게 움직였어야 할 용산재난상황실은 날짜를 넘겨 새벽 0시 43분에 통화가 시작됐다. 참사 희생자들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중앙재난상황실은 다음날 오후 2시 38분이 첫 통화였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경찰, 지자체가 동시에 써야 위력을 발휘하지만 관련 매뉴얼을 아직 보지 못했다"며 "내년부터 실전에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산구 관계자는 "전화·카카오톡 등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데 다급한 참사 현장에서 무전기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기관 내부의 정보나 치부까지 흘러나갈까봐 기피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재난 담당 기관 사이의 엇박자는 재연됐다. 이태원로의 교통 통제를 맡은 경찰과 소방 구조대가 제때 소통하지 못해 구급차 진입로 확보가 늦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시에 구조에 나선 소방과 해경·해군의 다른 통신망으로 인한 혼선이 연상된다.
통화량도 살펴보면 중앙재난상황실 2초, 용산재난상황실 10초, 그나마 통화를 했다고 할 수 있는 서울재난상황실은 183초, 3분 정도다. 사실상 재난안전통신망은 이번 참사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서 대규모의 혈세를 투입해서 통신망을 만들었었는데 결국 이번에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제대로 가동만 됐어도 대규모 참사, 인명 피해는 막을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