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홍수 두달만에 다시 적색경보
중세시대 배수시스템 부품도 못 구해

▲ 홍수로 길거리가 물에 잠긴 파 드 칼레 지역에서 4일 한 여성이 의자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다. ⓒ AFP통신
▲ 홍수로 길거리가 물에 잠긴 파 드 칼레 지역에서 4일 한 여성이 의자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다. ⓒ AFP통신

지난해 11월 역대급 홍수로 몸살을 앓은 프랑스 북부 지방에 두 달 만에 다시 홍수 적색경보가 내려졌다. 태풍, 기후변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돼 온 평소와 달리 잇달아 홍수를 겪으며 전문가들은 인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3일 프랑스 북부 파 드 칼레(Pas-de-Calais) 지역에 홍수 적색 경보가 내려졌다. 4단계로 나뉘는 경보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이다.

파 드 칼레 지역에 두 달 전 홍수로 차오른 지하수가 낮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최근 폭우가 쏟아지며 다시 물난리가 났다. 한때 단 몇시간 만에 50㎜ 이상의 비가 쏟아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역대급 홍수 두 달 만에 다시 적색경보

이 홍수로 도로에 물이 차 70대 노인이 차에 고립된 채 목숨을 잃었다. 한 여성 운전자는 고립 상태에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수백명이 집을 버리고 대피했으며 1만여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710번의 대피 작전이 이뤄졌으며 2000여채의 가옥이 물에 잠겼다. 43곳의 상점과 14곳의 회사가 피해를 입었다.

역사적인 수준이었다고 알려진 지난해 11월 홍수 이후 한달 반만에 홍수 적색 경보다. 주민들은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하게 됐다며 호소하고 있다.

파 드 칼레 주 몽트뢰이 쉬르 메르(Montreuil-sur-Mer) 지역에서 젖소를 키우는 한 농민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두 달 사이 50마리 젖소를 세번이나 다른 지역의 농장으로 옮겨야 했다"며 "지난번 홍수 피해를 이제 막 회복해가고 있었는데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다"고 말했다.

역시 파 드 칼레 주 테루안(Therouanne)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11월 한 달 동안만 시청 바로 옆에 있는 집이 40㎝ 높이로 두번이나 침수당했다"며 "임대도 판매도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다만 태풍을 동반했던 지난 번 홍수 때 282개 지역이 영향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이번 홍수로 영향을 받은 지역은 189개다.

120명의 소방관이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에 추가로 파견됐다. 체코,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등 주변국에서 펌프 시설을 지원하는 등 주변국들도 원조에 나서고 있다.

5일(현지시간)부터 복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 프랑스 북부 지역 시 안전당국 관계자가 홍수로 강물이 바로 밑까지 차오른 다리를 건너고 있다. ⓒ AFP통신
▲ 프랑스 북부 지역 시 안전당국 관계자가 홍수로 강물이 바로 밑까지 차오른 다리를 건너고 있다. ⓒ AFP통신

■ 홍수 원인으로 새롭게 지목된 배수 시스템

프랑스 북부 지역 배수 시스템인 '워터링그(Wateringues)'가 홍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지난해 홍수까지만 해도 시아란, 도밍고 등 대형 태풍이 연이어 발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졌다. 시아란은 순간 풍속 200㎞/h 규모의 태풍으로 최소 120만 가구에 정전을 야기했다. 태풍 도밍고 또한 숨 돌릴 새 없이 같은 경로로 이동했다.

역사적인 저지대라는 지역 특성도 있다. 프랑스 북부, 벨기에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지역을 통틀어 플랑드르 지역이라고 부른다. 플랑드르라는 단어 자체가 '홍수가 잦은 땅'이란 뜻의 고대 프리지아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두달 만에 다시 물난리가 나며 홍수를 자연 재해로만 치부했던 기존의 시각에서 지역 배수 시스템이 새롭게 도마 위에 올랐다.

파 드 칼레, 덩케르크 등 프랑스 북부 지역엔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간척지가 많다. 게다가 가을과 겨울에 대서양에서 자주 발생하는 태풍은 대서양과 맞닿은 이 지역들을 지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1000여년 전인 중세시대 고안된 워터링그는 여전히 홍수를 예측하고 농경지를 보호하는 주요 시스템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와 함께 기상 현상이 극단적인 양상을 보임에 따라 이 시스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워터링그는 중세시대 발명된 것을 고려하면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취약한 유압 시스템이다. 1500㎞에 달하는 도랑과 운하가 일련의 수문과 펌프를 통해 물을 빼내 저지대를 건조시킨다.

저지대에선 수문을 열어 물이 북해로 빠지게 하고 고지대에선 수문을 닫아 해수의 유입을 차단한다. 비가 내려 물이 차오르면 펌프를 이용해 범람을 막는다.

이번 홍수나 지난해 11월 홍수와 같이 자체 펌프만으로 불어나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할 땐 네덜란드 등 주변국에서 펌프를 빌려온다.

파 드 칼레, 덩케르크, 생-오메르 지역 45만명의 주민이 홍수의 위협에 대비해 이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1000년 묵은 배수 시스템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프랑스인들은 경악하고 있다. 노후화한 시스템의 유지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 감사원은 보고서를 통해 "배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나쁜 상태에 있다"며 "물이 범람해 홍수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수 공사를 진행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Gravelines) 시의 베르트랑 랑고 시장은 "40년 넘게 펌프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역도 있다"며 "문제는 너무 오래된 시스템이라 더 이상 부품을 구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당국 한 관계자는 "배수 시스템의 관리 책임이 기능별로 세군데로 나뉘어 있어 적극적인 책임을 다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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