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판결 패소에 근로복지공단 항소

▲ 서울행정법원이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유가족이 제기한 산재 관련 재판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 삼성전자
▲ 서울행정법원이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유가족이 제기한 산재 관련 재판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고 신정범씨 유족이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소하자 불복해 항소했다.

신모씨는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산재가 아니라며 지급을 거절했다.

26일 서울행정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신씨는 2014년 7월 삼성전자에 입사, 경기 화성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공정 엔지니어로 일했다. 반도체 설비 유지와 보수를 맡았고 신규라인이 증설될 때는 공장 하부 공간인 서브팹(Sub-FAB)에 드나들며 일했다.

신씨는 2년 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수어통역센터에서 일했던 시기부터 눈저림 증상 등이 나타났고 2021년 3월 결국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유족에 따르면 신씨는 175㎝에 84㎏의 건장한 체격으로 삼성전자 외에 백혈병 발병인자와 연관된 물질에 노출됐던 업무를 맡았던 적도 없고 유전적 소인이나 다른 질병도 없었다.

백혈병을 진단받은 지 3개월이 지나 신씨는 공단에 산재로 인한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이에 공단은 신씨로부터 삼성전자 사업장의 업무 특성과 작업내용 등이 포함된 재해자 확인서 등의 자료를 받았다.

하지만 공단은 '해당 사업장의 작업 환경에 대한 기존 자료가 있다'는 이유로 개별역학조사 등 추가적 전문 조사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2021년 10월 공단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결과 등을 근거로 들며 신씨의 백혈병은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요양불승인처분을 결정했다.

이에 불복한 신씨는 지난해 1월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10개월 후 숨졌다. 32살에 숨진 신씨를 대신해 어머니가 소송을 이어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은 지난 7일 신씨가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신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신씨가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SET-UP 업무, 건식식각 공정 PM 업무, BM 업무를 1년 8개월동안 상시로 맡았다"며 "이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신씨가 맡았던 건식식각 공정엔 이소프로필알코올(IPA), 염화수소(염산), 불화수소(불산) 등의 화학물질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을 교체하거나 세척하는 작업 과정에서도 유기용제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부품 교체·세척 과정에서 노동자는 아르신 등의 유해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될 수 있다.

신씨와 같이 웨이퍼 가공 정비 작업을 할 경우 노동자는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된다.

신씨가 신규라인 증설 때마다 드나들었던 Sub-Fab 역시 전력 공급 설비들이 들어차 있어 순간적으로 높은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같은 유해요인들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각각의 유해요인들이 백혈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신씨는 주 60시간가량의 과로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앞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각종 질병을 얻고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80명에 달한다.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던 고 황유미씨는 용인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세정 작업을 했다. 이후 2005년 6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숨졌다.

황씨와 같이 일했던 이숙영씨도 2006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 밖에 화성공장의 김기철씨, 기흥공장의 이혜정 씨 등 삼성 반도체공장과 관련돼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숨졌다.

삼성전자와 비슷한 환경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에게 백혈병·림프종 등 림프조혈계 질환이 발생한 비율은 평균 발병률과 비교할 때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6개 기업에서 1998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자 20만1057명을 조사한 결과 암 피해자는 3442명, 사망자는 117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올림 관계자는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존재한다"며 "산재보험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항소를 남발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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