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홍철 전문위원·IT보안 전문가
▲ 임홍철 전문위원·IT보안 전문가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 과거 어느 날, 둘째 딸이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는 불쑥 이렇게 물어왔다. "아빠, 나도 저런 게임 하고 싶어"라고.

안경 하나만 쓰면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해 마치 현실처럼 보고 느끼며 게임을 하는 모습이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한 듯 했다.

사실 어른인 나도 그런 게임을 해보고 싶은 것은 같았다. 그런 게임이 아직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래서 이렇게 답해줄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그런 게임이 나올 거야. 그때 실컷 하자"

시간이 지나 2018년이 되자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개봉했다.

IT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상당히 현실적인 가상현실 게임 구현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안경을 통해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모습, 이동을 위해 천장에 매달린 줄에 몸을 연결함으로써 게임 속 나의 움직임과 현실의 나의 움직임을 일치시켜 뇌의 혼란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려 한 점, 게임 속 재화(사이버머니)가 실제 현실에도 사용 가능한 점,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다양한 캐릭터들(고지라·건담·아이언 자이언트 등)을 동원해 만화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게임 속 세계를 창조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낸 점 등.

참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과 함께 다가올 미래의 게임 모습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미래 게임의 모습이 영화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게임업계가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매출의 하락, 신작 게임의 부진, 인력 구조조정, 핵심 개발인력들의 이탈 등 어둡고 암울한 소식들만 온라인상에 가득하다.

세계 게임시장을 주름잡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Kpop이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고 넷플릭스 등에서 연이어 제작되는 한국 드라마, 영화의 세계적인 성공, K-Food의 흥행과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K-Game도 그러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시간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현재 사상 유례없는 콘텐츠 확보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확장하고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이 미처 느끼기도 전에 조용히 미래 시장의 선점을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 SCP라고 들어 보았는가? 전 세계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자체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있는 세계관의 이름.

Secure, Contain, Protect 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진 SCP 세계관은 범지구적, 범우주적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수많은 생명체들을 창조해내며 인터넷 세계에서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혹 BackRoom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이해하기 어렵고 상상하기도 힘든 미지의 무서운 장소(또는 공간)라는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생성되며 세계관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백룸 속 세계관과 엔티티들을 확장해 나가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혹 크툴루 신화를 아는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시작하고 어거스트 덜레스가 정리한 가공의 코즈믹 호러 신화다.

인류 출현 이전의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괴한 외계 종족들과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공포를 주제로 지금도 2차, 3차에 걸친 세계관 확장을 이뤄내며 각종 영화, 게임의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혹 헤일로를 아는가? 기원전 15만년 전부터 미래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주적 존재들의 탄생과 갈등, 반목에 따른 우주전쟁을 주제로 상상을 초월한 광범위한 세계관을 토대로 여러 애니, 영화, 게임의 소재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범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더욱 확장해나가고 있다.

더욱 무서운 점은 이를 열광하는 추종자들이 스스로 2차, 3차의 콘텐츠들을 생산하며 세계관 확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콘텐츠는 게임, 오락, 영화, 애니,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내 게임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계 시장에서 싸우기 위한 스스로의 콘텐츠,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만들고 있는가? 이를 홍보하고 확장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자신만의 세계관, 자신만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투자하고 있는가? 혹 기존 게임의 성공방식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미래시장에서 싸울 준비가 돼있는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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