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호 태풍으로 인해 어느 한 교정의 소나무가 부러져 있다. ⓒ 전형금 기자
▲ 제6호 태풍으로 인해 한 교정의 소나무가 부러져 있다. ⓒ 전형금 기자

제6호 태풍 카눈은 11일 오전 6시 북한 평양 남동쪽 80㎞ 지점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3시 괌 서쪽 730㎞ 해상에서 태풍으로 발달한 뒤 14일 3시간 정도 만에 다시 '열대저압부'로 돌아갔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수명은 닷새 정도인데 카눈은 그 3배를 태풍으로서 세력을 유지했다. 이례적으로 두 차례 갈지자 모양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거쳐 한국·일본·대만 3개국에 피해를 남겼다.

1951년 이후 발생한 1881개 태풍 가운데 카눈처럼 2주 이상 태풍의 지위를 지킨 태풍은 채 1%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자원봉사자가 제6호 태풍 카눈이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있다. ⓒ 속초시
▲ 자원봉사자가 제6호 태풍 카눈이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있다. ⓒ 속초시

◇ 뜨거워진 바다 ··· 태풍 수명 늘린 원인

뜨거운 바닷물이 카눈의 세력 유지를 도운 것으로 분석된다. 해수면 온도가 높으면 바다에서 태풍으로 더 많은 열과 수증기가 공급될 수 있어 태풍이 세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

통상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 그래서 해양 열용량이 1㎠당 50킬로줄(KJ) 이상이면 태풍이 발달할 조건을 갖춘 상황이다.

한반도와 일본 주변 바다만 해도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도 안팎 높은 28~29도에 달한다.

평년보다 뜨거운 바다는 세계적 현상이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C)'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해수면 평균온도(극지방 제외)는 20.96도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의 바다가 뜨겁다 보니 '열대저기압 장기 생존'이 유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바다에서 발생한 사이클론 프레디는 5주하고도 이틀을 더 생존해 역대 가장 수명이 긴 사이클론으로 기록됐다. 프레디는 인도양을 완전히 가로질러 마다가스카르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동부에 큰 피해를 입혔다.

▲ 제6호 태풍 카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있다. ⓒ 속초시
▲ 제6호 태풍 카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있다. ⓒ 속초시

◇ '왕눈이 태풍' 카눈 ··· 눈의 크기 130㎞ 육박

카눈처럼 중심의 눈이 큰 '왕눈이 태풍'이 수명이 길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눈은 국내 상륙 직전 눈의 크기가 130㎞에 달했다. 카눈 이전엔 2018년 태풍 솔릭이 '큰눈 태풍'으로 꼽히는데, 솔릭은 괌 북서쪽 260㎞ 해상에서 발생해 우리나라를 지난 뒤 연해주 남쪽 바다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하고 그 뒤 미국 알래스카까지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눈이 가장 컸던 태풍으로 꼽히는 1997년 태풍 위니도 20일 가까이 생존했다.

카눈은 10일 오전 9시 20분 경남 거제에 상륙해 11일 오전 1시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다. 국내를 통과한 시간도 16시간에 달해 이례적으로 길었다.

▲ 제6호 태풍 카눈으로 인한 폭우로 농작물이 물에 잠겨져 있다. ⓒ 속초시
▲ 제6호 태풍 카눈으로 인한 폭우로 농작물이 물에 잠겨져 있다. ⓒ 속초시

◇ 이례적 내륙 '수직 관통' 경로 ··· 세력 약화해 한반도 전체 종단은 실패

카눈은 애초 예상과 달리 '한반도 남북 종단'에는 이르지 못했다.

예상보다 다소 약한 세력으로 상륙한 데다가 내륙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복잡한 지형과 마찰을 빚으면서 위력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자료가 확인되는 1951년 이래 사상 처음으로 태풍으로서 우리나라를 종단했으며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백두대간을 넘은 첫 태풍으로도 기록됐다. 국내에서 이례적인 경로는 주변 기압계가 독특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쪽과 동쪽에 자리한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 모두 우리나라를 지배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은 두 고기압 사이 '빈 공간'이 됐고 카눈은 이 공간을 길처럼 이용해 북상했다.

고기압 사이 공간에서 움직인 카눈에겐 이끌어줄 지향류가 없었다. 카눈이 자체 회전력 때문에 약간 북서쪽으로 휘었지만 거의 '수직'으로 북상한 이유다.

국내에 상륙하는 태풍 대부분은 남해안이나 서해안에 상륙한 뒤 우리나라 가까이 세력을 확장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부는 지향류를 따라 '남서→북동' 경로로 움직였지만 카눈은 완전히 달랐다.

북상하는 태풍을 동쪽으로 밀어내고 원통형 구조를 깨뜨리는 역할을 할 대기 상층 제트기류가 현재는 한반도 북쪽에서 비교적 약하게 흐르는 점도 카눈의 이례적 경로와 장기체류의 요인으로 꼽힌다.

▲ 제6호 태풍 카눈으로 인해 과수원의 과일들이 상품가치를 잃은 채 낙과해 있다. ⓒ 경북도
▲ 제6호 태풍 카눈으로 인해 과수원의 과일들이 상품가치를 잃은 채 낙과해 있다. ⓒ 경북도

◇ 느림보 태풍 카눈, 오래 머물며 많은 비 뿌렸다

카눈은 국내 상륙 후 속도가 평균 시속 20㎞에 불과한 '느림보'이기도 했다. 직전 국내에 상륙한 힌남노와 비교하면 속도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카눈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강원 영동·영남을 중심으로 많은 비를 뿌렸다.

영남은 카눈의 이동로였고 강원 영동은 카눈의 반시계방향 회전에 따라 부는 바람이 동해에서 수증기를 끌고 와 태백산맥에 부딪히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강원 속초에는 10일 하루에만 368.7㎜가량 비가 내렸는데 이는 속초 일강수량 역대 최고치이자 1959년 이후 국내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기록된 일강수량 가운데 9위에 해당한다.

속초에는 10일 2시 5분부터 오후 3시 5분까지 1시간에 91.3㎜의 호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역대 태풍에 의한 1시간 강수량 가운데 7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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