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종·작가 칼럼니스트
▲ 박근종·작가 칼럼니스트

우리 경제에 부동산 발 금융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라는 뇌관이 자리 잡고 있다.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유동성 악화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28일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8조에 따른 금융채권자협의회에 의한 공동관리 절차(Workout·기업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만기도래한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 관련 48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대출을 갚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알짜 계열사 매각, 지주사 차입 등을 통해 긴급 자금을 마련했는데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은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PF 대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다.

태영건설은 올해 초에 모기업인 태영홀딩스로부터 4000억원의 긴급자금을 대출받는 등 자금난을 겪어왔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보증한 PF 대출 잔액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4조41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민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위한 PF 대출 보증액을 제외한 순수 부동산 개발 PF 잔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9월 말 자기자본 8400억원의 3.8배에 이르는 규모다.

순차입금만 1조9300억원에 달해 3분기 말 부채비율이 478.7%에 달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갚아야 할 금액만도 3956억원에 이른다. 이어 내년까지 만기가 되는 PF 대출 보증은 3조6000억원이 넘는다. PF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시행사가 갚지 못하면 태영건설이 떠안아야 할 빚이다.

그동안 만기 연장을 통해 어렵게 버텨온 부동산 PF 폭탄이 결국 터진 것이다. 시공능력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침체를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의 연쇄 위기 등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 자구 계획을 내놓고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워크아웃은 채권단 4분의3 이상이 동의하면 개시된다. 그 후엔 채권단 관리하에 대출 만기 연장, 신규 자금 지원 등이 이뤄진다.

워크아웃이 받아들여져 채무 만기 연장 등을 통한 회생이 추진돼도 파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행하고 있는 공사와 분양이 차질을 빚고, 협력사들에도 어려움이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채와 기업어음, PF 자산담보부기업어음 시장에서도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할 경우 시공순위 30위권 이내 대형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건 2013년 쌍용건설 이후 10년 만이다.

그러나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은 사태의 끝이 아니다. 건설 경기 호전을 막연히 기대하고 만기 연장에 치중해온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더는 덮어둘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부실 위험에 놓인 건설사가 태영건설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융 시스템까지 위기에 빠지기 전에 부실 건설사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PF는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사업비를 대출받는 것을 뜻한다.

금리가 낮고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시공과 분양이 원활해 문제가 없었지만, 고금리와 경기 악화로 이미 지난해부터 자금경색과 건설사들의 부실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됐다.

전체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0년 말 92조5000억원이었지만 2021년 말 112조9000억원, 지난해 말 130조3000억원, 지난 9월 말 134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PF 연체율도 2020년 말 0.55%에서 2021년 0.37%로 낮아지다가 지난해 1.19%, 지난 6월 말과 9월 말 각각 2.17%, 2.42%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부실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PF 사업 추진이 불발되면 건설사들의 채무(우발채무)가 된다는 점이다. 사업성을 담보로 하는 시행사의 PF에 대해서는 시공사인 건설사들이 연대 보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자체 유효등급을 보유한 건설사 가운데 PF 보증이 존재하는 주요 16개 건설사의 PF 보증액은 28조3000억원에 이른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코오롱글로벌 등도 PF 우발채무에 따른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공사로 행정처분을 받은 여파로 GS건설 등도 특별히 유동성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처지라고 한다.

부동산R114는 2024년 부동산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부동산 PF 만기도래 시 부실 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게 된다"면서 실물 침체, 구매력 약화, 매수 심리 약화 등의 파급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형건설사들이 곧바로 부실 위험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특히 지방의 중소형 건설사들은 이미 줄줄이 부도를 내는 등 줄도산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실제로 광주 해광건설과 경남 창원의 남명건설이 최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규모가 작은 하도급 건설사들이 먼저 부실에 빠지고 큰 건설사로 위기가 옮겨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최악의 사태는 부실이 금융 위기로 번지는 것이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부실 징후는 연체율 급증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2.42%로 지난해 말 1.19% 대비 2배 이상으로 올랐다. 저축은행은 더 심각해 PF대출 연체율이 직전 분기보다 0.95%포인트 오른 5.56%에 달했다.

새마을금고·신협 등 상호금융권 연체율은 3.05%포인트 급등해 4.18%였다. 특히 본 장기 자금(PF)으로 전환하기 전 단계인 사업 초기의 브리지론(Bridge Loan·단기 자금) 가운데 30% 이상이 부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것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2008년식의 금융위기가 바로 재현될 일은 없겠지만, 대규모 부실 사태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면 은행 등 제1금융권도 결단코 안전하지 못함을 직시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금융권·건설사 등과 릴레이 회의를 갖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PF 정상화를 지원하는 배드 뱅크(Bad bank·부실채권 전담은행)가 아직 결성조차 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우리는 2011년 PF 부실 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사태 때 발생한 '디지털 뱅크런'에서 보듯 요즘엔 부실의 전이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부동산 PF 부실이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임을 인식하고 시장감시를 강화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충당금 적립을 늘리는 등의 대응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반적 수준의 안일한 대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부동산 PF 연착륙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철저히 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시장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대책의 강도는 더 높여야만 한다. 부실의 싹을 미리 잘라야만 전체가 무너지는 최악을 면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연장으로 연명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일단 살리고 보자"라는 임시변통의 '퍼주기식 해법'은 시스템 위기만 재촉할 뿐이다. 오히려 부실을 키워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파괴력만 더 강화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지원하고, 한계기업은 과감히 구조조정을 해야만 한다. 신속한 옥석 가리기로 줄도산을 막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당국은 시장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히고, 건설사들의 자금난이 금융과 실물 경제에 전이되지 않도록 발 빠른 대응에 나서야 한다.

태영건설은 전국 22곳 주택사업장에서 1만9869가구를 분양했다고 한다. 태영건설이 회생의 기적이 있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시공사를 교체하고 공사를 바로 재개해 분양 계약자들이 입주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조처해야 한다.

당연히 하도급을 체결한 500여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도 놓쳐선 안 된다. 대부분의 업체가 대금지급 보증보험에 가입했다고 하지만 일시적으로 돈줄이 막혀 억울하게 흑자 도산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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